“1명의 스타에 좌지우지, 요식업계 우스워”…냉부 박준우의 ‘폭탄발언’[미담:味談]

박준우 셰프. 헤럴드DB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한국 요식업은 완전히 ‘하향 평준화’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인기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부탁해’ 등 여러 방송활동으로 유명인사가 된 박준우 셰프가 한국 요식업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며, 소신을 밝혔다.

2024년이 끝자락에 이를 무렵, 박준우 셰프가 운영하는 서촌의 오쁘띠베르를 찾아갔다. 하늘색 셔츠에 청바지, 털털한 모습의 박준우 셰프가 맞이했다. 그는 방송에서 보여준 솔직 담백한 모습 그대로, 마음 속 간직해왔던 속 이야기를 숨김없이 꺼냈다.

그가 말하는 하향 평준화란 ‘공장화된 음식’을 의미한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을 조립하듯 만드는 프랜차이즈가 주류가 된 현재의 요식업계를 겨냥한 말이다. 맛의 다양성은 무너지고, 획일적이고 자극적인 맛만 추구하는 공장화된 음식이 한국 요식업계를 집어 삼키고 있다.

“공장화된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그 운영 시스템을 지향하는 개인사업자들이 늘어나면서 소비자의 식생활과 요식업계는 효율성이라는 핑계로 하향평준화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지난 9일 통계청이 지난 12월에 발표한 ‘2023년 프랜차이즈 가맹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30만1327개로 2022년 28만6314개보다 5.2%(1만5013개) 증가했다. 전체 매출액도 108조7540억원으로 전년 대비 8.4%(8조4300억원) 증가했다. 편의점과 문구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는 외식 분야다.

프랜차이즈 식당의 주류가된 요식업…韓 식문화의 양극화 초래


박준우 셰프. 헤럴드DB


이런 프랜차이즈의 증가는 한국 식문화의 양극화까지 초래했다고 박 셰프는 보고 있다.

“과거와 달리 좋은 음식에 돈을 쓰는 문화가 형성된 것은 사실이에요. 문제는 프랜차이즈와 오마카세나 파인다이닝 같은 고급식당 그 중간의 선택권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에요. 적당한 가격에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식당이 한국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워요. 식문화의 양극화가 이뤄진 셈이죠.”

미식이 발달한 유럽은 다양하게 미식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저렴한 가격에도 만족도가 크고 역사도 오래된 가게들이 즐비하다. 박준우 셰프는 과거 벨기에를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를 돌며, 유럽의 미식문화를 접했다.

파리의 빕그루망 레스토랑, ‘오베르주 피레네 세벤느’ 전경.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스튜, 그릴드 라이스 등 프랑스 가정식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제공한다. 미슐랭 가이드


오베르주 피레네 세벤느에서 판매하고 있는 크림스튜 . 미슐랭 가이드


“유럽의 경우에는 5유로(약 7500원)로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식당이 존재해요. 미식을 즐기는 다양한 부류가 탄탄하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발전한 그들의 미식 문화가 있고요.”

안타깝게도 이런 양극화는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랜차이즈가 요식업계 주류가 된 상황에서,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더욱 더 편의성만 찾게 될 것이고, 맛은 더욱 획일적으로 변하게 될 것으로 바라봤다. 소비자들은 획일적인 맛에 길들여지게 되고, 미식은 소수의 전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래의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더는 ‘요리사’를 만날 수 없을지 몰라요. 로봇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겠죠. 기업은 비용과 편의성을 따져 어떤 방식으로든 더욱 더 기계화를 택할 것이고, 맛은 더욱 더 획일화 되겠죠. 결국 소비자들은 획일화된 맛에 길들여질테고요. 미식은 소수의 향유물이 될 거에요.”

1명의 스타에 요식업계 좌지우지…미디어가 만든 폐해


방송 촬영 중인 박준우 셰프. 방송화면 캡처


박준우 셰프는 미식의 하향평준화에 독보적인 1명의 요식업 스타만 내세운 미디어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어느새인가 1명의 말만 ‘진리’로 인정받고, 다른 목소리는 묵살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셰프들도 늘어가고 있다. 그의 말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조차 겁내는 요식업계의 현실 속에서 미식의 범위가 확장되기란 어려워 보인다.

“미디어가 입맛에 맞는 요식업계 스타를 만들어내면서 어느새 국내 요식업계는 단 한 사람의 의견이나 방식에 의존하고 좌지우지되는 우스운 상황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다른 입장이나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무게를 실어줘야 하는데, 미디어는 그런 걸 모두 배제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의 폐해는 이뿐 아니다. 음식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식문화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생산하기도 한다. 또 ‘면치기’로 대변되는 괴식 문화 전파까지 미디어가 미식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적지 않다. 음식과 식문화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고, 예능과 인기에만 초점을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방송에 출연했을 당시에도, 계속 잘못된 정보를 이야기해주는 경우가 있었어요. 예능이 목표인 건 맞지만, 음식을 소재로하는 방송이라면 어느정도 그 음식에 대한 사명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박준우의 노스텔지어 ‘오쁘띠베르’…맛의 다양성을 더하다


박준우 셰프가 운영하는 서촌의 오쁘띠베르. 헤럴드DB


그런 박준우 셰프가 운영하는 오쁘띠베르는 시류와는 다른 길에 있는 곳이다. 화려하거나 과하지 않다. 박준우 셰프의 젊은 시절 추억이 담긴 유럽 본토의 맛을 재구성하려 했다. 어찌 보면 투박해 보이지만, 그렇기에 오쁘띠베르만의 특별함이 있다. 그가 추구하는 다양성의 가치가 그곳에 있다.

“과거 추억에 잠기는 저만의 노스텔지어에요. 벨기에 시골에 있었을 때가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그곳에서 먹었던 디저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정말 클래식한 디저트요. 가끔은 유럽인들도 저희 가게에 추억을 가지고 들어오시곤 해요.”

오쁘띠베르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레몬타르트’는 박준우 셰프가 어릴 적 벨기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들던 정통 레시피를 따랐다고 한다. 젤라틴이나 합성향료를 사용하지 않은 오쁘띠베르의 레몬타르트를 한 입 먹는 순간, 입 안에 레몬향이 강렬히 퍼진다. 달콤함 뒤에는 레몬 특유의 산미가 따라온다.

오베르쁘띠의 레몬타르트. 박준우 셰프 인스타그램


박준우 셰프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맛과 멋을 내세운 미식의 길을 찾고자 한다. 그것이 비록 인기나 유행, 미디어 속 유명 인사가 가르키는 방향과 달라도 상관없다. 박준우 셰프에게 그보다 중요한 건, 그가 간직한 추억과 경험을 토대로 만든 디저트와 그것을 그대로 사랑해주는 손님들이다.

“저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할 수가 없어요. 길바닥에 가지 않는 한, 제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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