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금리·환율 ‘트리플 리스크’…새해 첫 금통위 금리결정 고민

충성파 일색·미국판 경제 계엄까지
‘머니머신’ 인식 韓 표적될 수 있어
무역적자 끊으려 통상 압박 가중


지난해 한국은 550억달러 이상의 대미 흑자를 기록한 가운데, 무역 적자 해소를 공약으로 나선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사진은 인천 선광남항 야적장에 수출 대기 중인 컨테이너 [헤럴드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으로 돌아온다. ‘아메리칸 퍼스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더 위대하게) 등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 기반의 국정 운영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간 미국과 맺었던 혈맹이나 동맹 같은 전통적 이념 가치에만 기댄다면 수출·금리·환율에서 ‘트리플 리스크’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이 세계 경제 측면에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결국 ‘관세’다. 그는 최대 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수입품엔 60%까지 매기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더 나아가 트럼프 당선인이 ‘국가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방안까지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는 1977년 제정된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다. 이 법은 미국의 안보나 외교, 경제 등에 위협이 되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해 외국과의 무역 등 경제 활동을 광범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해 준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관세나 예산 등을 재배정할 수 있다. 일종의 미국판 ‘경제 계엄령’인 셈이다.

특히 2기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보다 더 독한 미국 우선주의를 펼칠 수 있단 점에서 우려가 크다. 과격한 정책을 견제했던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 이번 인선에선 아예 사라졌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이 지명한 백악관과 내각, 주요 연방 기관 등의 핵심 직책 후보자는 총 91명 모두가 ‘충성파’로 구성됐다.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강력히 추진할 인사들인 셈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트럼프 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한민국에 가진 기본 인식이 ‘부자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 경제클럽’ 주최 대담을 보면 그의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트럼프 당선인은 당시 우리나라를 겨냥해 “‘머니 머신(부유한 나라)’”이라며 우리나라가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재임 시절 한국산 트럭에 대한 관세 부과한 사실도 거론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난해 대미 수출은 1278억달러로 전년 대비 10.5%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미 수출은 2018년(727억달러)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으로 매년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기록을 이어가며 순항하고 있다.

미국 수출이 호조를 나타내다 보니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도 전년(444억달러)보다 25% 불어난 557억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한국은 대미 무역에서 1998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흑자를 이어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무역 적자 해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미 흑자’ 행진을 향한 한국에 통상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지만, 이 역시 트럼프 신정부가 추진하는 보편관세를 막을 방패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수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세 여파는 금리와 환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관세 부과는 상품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행위다. 관세를 부과한 만큼 자동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거세지고, 금리를 내리긴 더 어려워진다. 지난해 9월 ‘빅컷’으로 시작된 미국 금리 인하 기조가 멈출 수 있다.

당장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들은 금리 동결을 시사하고 나섰다.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9일(현지시간) 보스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상당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금리 조정에 대한 느린 접근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불확실성, 과도한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2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8일(현지시간) 2023년 하반기 이후 처음으로 5% 선을 넘었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미국 금리가 내려가지 않으면 달러 강세는 계속된다.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달러 강세 분위기가 강화되면서 지난 10일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는 전 거래일보다 4.5원 오른 1465원을 기록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17% 오른 109.338을 나타냈다.

우리나라 통화당국 입장에선 정책을 펼칠 공간이 줄어든다. 계엄·탄핵 사태까지 겹쳐 더 위축된 소비·투자 등 내수를 살리려면 금리를 더 낮춰 이자 부담을 줄여야 하지만, 금리 인하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지면 가뜩이나 불안한 원/달러 환율이 더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부양과 환율 안정 모두 매우 중요한 경제 현안인 만큼 통화당국 입장에선 딜레마적 상황에 부딪힌 셈이다. 당장 오는 16일 열리는 새해 첫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환율이 높아지면서 시차를 두고 물가가 다시 뛸 수 있다”며 “결국 (금리 결정은) 환율·인플레이션 방어냐, 경기 부양이냐 택일의 문제인데, 정치적 혼란으로 내수가 너무 안 좋아져서 힘들지만 1월 금리를 인하하는 방향에 무게가 좀 더 실리지 않을까 본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 내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금리 인하 속도가 조절되면서 우리나라도 동결할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금통위가 내수와 환율 중 우선순위를 고르는 것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 불확실성과 이로 인한 미국 금리 인하 속도 둔화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입수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내외 리스크(위험) 요인들의 전개 양상과 그에 따른 경제 흐름 변화를 자세히 점검하며 금리 인하 속도를 유연하게 결정해 나갈 것”이라며 “전례 없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고 새해 물가, 성장, 환율, 가계부채 등 정책 변수 간 상충이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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