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세계유산에 못질 ‘꽝꽝’…“제작비 절감 목적? 징벌적 손해배상 검토해야” 건축가들 일침

서울건축포럼 ‘병산서원 훼손사건’ 토론회
건축가들 “대체불가능한 문화유산 훼손”
“책임 명확히 하고 재발 방지책 마련해야”


세계문화유산 병산서원 만대루 기둥에 남은 못자국과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경북 안동시·연합뉴스]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방송사에서 못 박은 부분을 복구하기 위해 협조한다고 하는데, 이미 대체 불가능한 세계문화유산을 훼손한 상태에서 어떻게 복구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안에 대해선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할 수 있도록 공론화해야 합니다.” (함인선 한양대학교 특임교수)

지난 10일 사단법인 서울건축포럼은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건축사사무소에서 ‘병산서원 훼손 사건에 대한 건축가의 소고’ 토론회를 열었다. 최근 KBS 드라마 제작진이 드라마 촬영 과정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북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와 나무 기둥에 못질해 훼손한 사건을 놓고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날 토론회에는 지난달 30일 병산서원에 방문했다 문화재 훼손 장면을 목격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문제를 제기한 건축가 민서홍씨를 비롯해 박성준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회장,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윤지희라 홍익대학교 교수, 함인선 한양대학교 특임교수 등이 참석했다.

전통 건축 전문가인 김봉렬 교수는 “문화재 위원회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존재하며, 문화유산을 사용할 때 어느 범위까지 촬영을 허용할지 결정하는 기준도 존재한다”며 “제작진이 이런 절차를 밟았는지 모르겠지만 문화재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절대 원칙을 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화유산은 대체 불가한, 재생산이 안 되는 건물”이라고 덧붙였다.

KBS 드라마 촬영팀이 병산서원에 못을 박고 초롱을 달고 있는 모습. [건축가 민서홍씨 페이스북]


그러면서 김 교수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 세트장을 만들거나 컴퓨터 그래픽(CG)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인데 (드라마 제작사가) 제작비를 아끼려고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와 관계없는 판타지 사극을 제작하는데 병산서원을 등장시키는 게 맞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제작진이 못질해 매단 싸구려 초롱은 한국 조선시대의 미적 감각을 대표하는 병산서원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성준 회장은 “이번 사건은 문화유산을 단순히 세트장으로 사용한 사례로 상당히 유감스럽다”라며 “글로벌 홍보의 관점에서는 문화유산을 사용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번 사건처럼 방송국에서 촬영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허가를 내주는 체계는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가 심사를 거쳐 촬영 허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회장은 “문화재 관리자가 입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진이 촬영을 진행하게 되면 어떤 훼손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관리자가 아닌 관광객이 문화재 훼손 문제를 지적해야 하는 부재 상황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책임에 대한 부분도 명확히 규정을 해야 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훼손에 대한 경각심을 알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KBS 새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촬영팀은 지난달 30일 병산서원 만대루 기둥 상단에 소품을 설치하기 위해 못질을 해 문화재를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제작진은 지난 3일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당하자 문화재 훼손을 사과하며 “병산서원 관계자들과 현장 확인을 하고 복구를 위한 절차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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