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립주의, 닉슨독트린, 플라자합의’ 뭐였더라…트럼프 귀환에 소환된 현대사[디브리핑]

지난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공화당 의원들과 회의를 마친 후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신고립주의, 닉슨 독트린, 먼로 독트린, 플라자합의….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트럼프 집권 2기’를 분석하는 용어들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에 중국과의 무역분쟁 격화를 예측하는 것은 물론 경제나 안보 측면에 동맹국들에게도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의 생각과 정책 아이디어)의 불똥이 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집권 2기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구호 아래 1기 때보다 국제 질서가 더 요동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新)고립주의로의 회귀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전경. [AFP]


트럼프 정책들에는 흔히 ‘미국 우선주의’, ‘신(新) 고립주의’라는 키워드가 따라붙는다.

트럼프 당선인의 구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1913~1921년 재임한 우드로 윌슨 전 미국 대통령이 썼던 말이다. 윌슨 대통령은 재임 중 미국을 유럽에서 발생한 1차대전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며 ‘고립주의’를 표방했다. 고립주의란 미국 국익을 위해 미국 외 다른 나라 사정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외교 기조로, 주로 미국의 보수 진영이 채택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신고립주의’적 대외정책을 통해 미국에 이익이 되는 분야에서만 압박을 통한 양자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등 안보문제에서는 발을 빼고 주변국에는 적극 개입하려는 ‘확장 야욕’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트럼프 당선인이 동맹국을 상대로 ‘고율 관세 부과’와 ‘방위비 전쟁’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인터뷰에서 동맹의 주축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미국의 탈퇴를 시사하는 등 초강경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난 7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의 자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로(도널드+먼로)’ 독트린…동맹국 영토도 노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그린란드 등을 미국령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돈로 독트린으로 풍자한 미 뉴욕포스트의 지난 8일자 지면. [엑스(X·옛 트위터) 캡처]


트럼프 당선인이 아메리카 대륙 및 인근 국가에 대해선 적극 개입하려는 ‘팽창적 미국 우선주의’를 드러내는 것도 신고립주의의 특징이다. 영토 확장이라는 팽창주의를 통해 자국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을 두고 먼로 독트린에 빗댄 ‘돈로(도널드+먼로) 독트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1817~1825년 재임)이 주창한 먼로 독트린은 유럽 등 외부세력의 영토 간섭을 배격한 미국의 미주 대륙 패권이 골자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8일 트루스소셜에 ‘돈로 독트린’으로 표현한 보수 성향의 뉴욕포스트 1면 사진을 게시했다. 이 사진은 북미 전역을 ‘미국의 51번째 주(캐나다)’ ‘파나마가(파나마+MAGA)’ ‘우리 땅(그린란드)’ 등으로 표시했다.

이에 대해 스튜어트 패트릭 카네기국제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823년 제임스 먼로 제5대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먼로 독트린’의 부활을 뜻한다”며 “서반구 패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플라자합의 2.0?…관세 빌미로 동맹 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


트럼프 행정부가 ‘플라자 합의 2.0’ 혹은 ‘마러라고 합의’를 통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를 목적으로 고율 관세정책에 이어 약달러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관세인상으로 수입품은 가격이 비싸지는 반면, 수출기업은 달러약세를 유도해 가격경쟁력을 꾀하겠다는 발상이다.

마러라고 합의는 1985년 미국이 프랑스와 일본 등 주요국 정부와 맺은 달러 가치 절하 협약인 ‘플라자 합의’를 빗댄 것이다. 협약이 실제 이뤄지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자국 통화 가치 절상이라는 격변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이 나온다.

12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자문위원장으로 지명된 스티븐 미런은 관세를 달러 가치를 약화하기 위한 국제적 개입 등의 도구로 제시하는 한편, 현재 2%인 관세를 약 20%에서 최대 50%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미런은 지난 11월에 작성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모델로 한 ‘플라자 합의 2.0’ 혹은 ‘마러라고 합의’를 통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팀이 보편 관세에 대해 세율을 매월 조금씩 높여가는 점진적 접근 방식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14일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팀이 관세 부과에 따른 인플레이션 급등을 피하면서 무역 상대국과의 협상력을 높인다는 목표로 이 같은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이 계획에 참여하는 자문위원들에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지명자,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지명자 등이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다만 해당 방안은 초기 단계에 있고, 아직 트럼프 당선인에게 보고되지 않았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닉슨 대통령 재림?…닉슨독트린, 고립주의·보편관세 유사


리처드 닉슨 미국 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AP]


한편 관세 등을 필두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신고립주의에 미국의 3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1969~1974년 재임)의 정책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고립주의 기반의 외교 노선, 보편관세 등 다양한 정책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닉슨 대통령은 재임 시절 ‘베트남 철군’ 공약을 내걸어 대선에서 승리했다. 장기화된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누적된 피로감과, 인플레이션과 무역적자 등의 문제가 만연하던 시기였다. 이후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1972년 베트남 파병 미군 50만여 명의 철수 결정을 내렸으며 주한미군 7사단도 철수시켰다.

트럼프 역시 신흥 패권국 중국이 미국에 강력한 위협으로 떠오르며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가 위태로운 샹황에서 재등판했다. 미국의 힘이 쇠락해져가는 시점에 ‘마가’를 내걸며 저소득·저학력 백인 남성 중심의 유권자 심리를 파고들어 지지층을 다진 결과 대통령에 당선됐고 재임까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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