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다시 급증할 가능성도
금융당국 대출규제 강도가 좌우
서울 시내 한 은행 대출 창구에서 업무를 보는 직원들 [헤럴드 DB] |
한국은행이 오는 16일 새해 첫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경기 회복을 위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받아들여 3연속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경우 고금리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던 가계 부담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이 지난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내리고, 대출금리 하락폭도 같다고 가정하면 가계대출 차주의 연간 이자부담은 약 3조원 줄어든다. 아울러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소상공인의 연간 이자부담도 1조7000억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지난해 말 겨우 꺾인 가계부채 증가세가 재현될 가능성에 대비해 당국의 대출 관리 중요성이 한층 중요해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4일 한은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41조4000억원으로 전달보다 1조9000억원 증가하며 8개월째 오름세를 이어갔다. 아직 12월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작년 12월 말 가계대출 잔액이 전달 대비 1조원 이상 늘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은행의 가계대출 역시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대출은 은행권에서만 지난해 4월부터 넉 달간 매월 5조~6조원씩, 8월에는 9조원 이상 늘어나며 가계 소비를 옥죄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지난해 10월 이후 오름폭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절대 규모가 워낙 커 가계는 물론 국가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
기준금리가 추가 인하되면 중장기 시장금리와 이에 연동된 대출금리가 하락하며 차주의 이자상환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선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신규 대출금리 하락, 기존 대출의 차환, 변동금리 대출의 금리 갱신 등으로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이자 부담 경감 효과는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이들로서 자금 추가 확보에 여력이 생긴다는 의미다.
다만 가계대출을 자극하는 요소로도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가계대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쏠리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는 점도 언제든 대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폭이 감소했던 지난해 11월 말 2금융권의 대출은 전달 대비 3조2000억원 늘며 증가폭이 확대된 바 있다.
최근 은행의 대출 규제 완화 흐름이 뚜렷하다는 점도 가계대출 증가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은행권은 지난해 말부터 대출 규제를 줄줄이 완화하고 있다. 연초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가 새로 설정되면서 대출에 나설 여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가산금리 상향을 통한 예대금리차(예금·대출 금리 차이) 확대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다는 비판 여론 등을 반영해 대출 가산금리도 내리기 시작했다. 새해 신규 대출 수요를 확보하려는 은행의 치열한 경쟁이 가계대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부채가 늘어날 가능성이 키우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면서 그럼에도 경기 상황을 고려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규제의 강도에 따라 가계부채가 얼마나 늘어날지 등의 요인은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준금리 추가 인하는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가계대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 관련 대출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금융규제의 영향이 큰데 금융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어 충분한 정책 효과가 나타나면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가계부채가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부의 대출총량 규제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올해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 이내로 관리할 계획이다. 정부가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올해 경상성장률은 3.6% 수준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는 올해 금융권 가계부채 관리 주기를 분기별, 월별 등 보다 짧게 잡고 스스로 내부관리용 DSR을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등 더 촘촘히 감독할 방침이다. 가계대출을 억제하되 지난해처럼 실수요자가 갑작스러운 ‘대출절벽’에 몰리는 현상을 방지하겠다는 차원이다.
또한 전세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SGI)의 보증비율을 100%에서 90%로 낮추고 수도권에 대해 보증비율을 추가 인하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오는 7월에는 ‘3단계 스트레스 DSR’도 시행할 계획이다.
스트레스 DSR은 미래 금리 변동성 위험을 반영해 대출 금리에 가산 금리를 더해 대출한도를 산출하는 것으로 3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 시 차주의 대출 한도는 6~16%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시장에는 가계대출 규제 강화책이 상수로 있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3연속 인하하더라도 가계부채가 금융안정을 저해할 정도로 급격하게 늘진 않을 것”이라면서 “기준금리보다는 연초 가계대출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 은행이 의욕 있게 경영목표 달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가 더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김은희·김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