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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간산업의 지속가능한 지배구조와 외국인 자본으로부터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제련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현재 13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는 업계 전문가들과 다양한 분야의 사외이사들이 균형을 이루며, 중요한 의사결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해왔다. 그러나 MBK·영풍 측이 14명의 이사를 추가로 선임하여 전체 이사회의 규모를 27명으로 확대하자는 제안을 내놓으면서, 한국자본시장에 새로운 이슈를 만들고 있다.
MBK·영풍 측이 최근 고려아연의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 구성과 운영 방식에 대해서 국내외에서 유례없는 이사회 구조를 요구하고 있어서 새로운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경영과 지배구조 관점에서 볼 때, 이사회의 규모는 의사결정 전문성과 효율성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사회가 지나치게 크면 생산적인 토론을 하기 어렵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매우 힘들어진다. 시가총액이 수백조원에 달하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대부분 10명 내외의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규모는 수 십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경영에 필요한 의사결정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규모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MBK·영풍 측이 제안한 27명 규모의 이사회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가장 먼저 고려아연의 모든 주주들의 입장에서 이렇게 많은 이사가 필요한지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27명이라는 이사들이 필요할 때마다 신속하게 한 자리에 모이기가 힘들 뿐 아니라, 설령 모든 이사들이 모인다고 해도 심도 있는 토론을 하고, 합의를 도출하여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결코 생산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 더구나 고려아연과 같은 국가기간산업에서는 신속하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이 필수적인데, 지나치게 큰 이사회는 이를 저해할 수 있다.
고려아연이 제안한 19명 이내의 이사회 규모 역시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해서 상당히 큰 수준이다. 하지만,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여 소수주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서는 10명 내외의 평균적인 이사회보다는 이사의 숫자가 늘어나야 할 것이다. 고려아연의 규모와 국가 기산산업적 특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도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사회 규모와 동시에 이사회 운영의 질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고려아연은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고, ESG위원회 설치하여 이사회의 독립성, 전문성, 다양성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의 적정 숫자라는 문제를 넘어서, 이사회가 회사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하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국가기간산업의 이사회는 경영권 분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사회는 해당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물론이고 고려아연처럼 국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해당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해당 기업의 이사 숫자를 과도하게 확대하여 경영권 분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일은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고 국가 산업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회사 경영의 가장 중요한 축이 되는 이사회의 전문성, 효율성, 다양성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특히, 고려아연처럼 국가기간산업의 경우에는 우리 산업 생태계 전체의 건전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