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20분 관저 내부진입 시작
8시 5분에 관저 앞 초소까지 도착
공무집행방해 채증 병행 속전속결
공수처·경찰 대규모 인력구성 주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경찰이 진입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15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은 지난 3일 진행됐던 1차 영장 집행과는 완전히 달랐다. 불과 30분 만에 관저앞까지 진입한 뒤 체포까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박종준 경호처장이 사임하는 등 경호처 수뇌부의 와해 분위기가 뚜렷해지는 가운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대규모의 체포 인력을 꾸리는 등 윤석열 대통령 측을 강하게 압박한 점이 크게 주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특수단)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 체포팀은 이날 오전 4시20분 전후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주변에 속속 도착했다. ‘15일 새벽 집행’ 사실이 전날부터 알려지며 한남동 일대엔 대통령 체포를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시민들 수천명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대통령 관저 주변에 기동대 54개 부대 약 3200명을 투입했다. 이들은 집회 참가자들의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관저로 향하는 진입로를 확보했다. 경호처는 관저 입구에 대형버스 등을 동원해 1차 저지선을 구축했다.
관저 앞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약 6500명의 윤 대통령 지지자가 결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윤갑근·김홍일 변호사 등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 국민의힘 의원 30여명과 인간띠를 이루고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불법이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윤 대통령의 체포·수색영장을 제시한 공수처와 경찰은 오전 5시40분께 영장 집행의 적법성을 강조하며 인간띠를 형성한 이들을 뚫고 진입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몸싸움 등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집행을 저지하는 시민들을 향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하겠다”고 경고하면서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 등을 강제로 해산하기도 했다.
체포팀은 오전 7시20분 본격적으로 관저 내부 진입을 시작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던 시점. 철제 사다리를 이용해 선발조가 정문 버스차벽을 넘었고, 차를 몰아 진입로를 텄다. 이후 100여명의 체포팀 인원들이 관저 진입로로 들어섰다. 일부 경찰은 공무집행 방해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시종일관 카메라를 들고 앞장서기도 했다.
경호처가 구축한 2차 저지선에 도착해 다시금 버스 차벽 앞에서 대치했다. 하지만 경찰은 곧바로 버스 차벽을 우회해 통과했고, 오전 8시5분께 관저 바로 앞 초소에서 경호처 직원들과 조우해 체포영장 집행 협의를 진행했다.이후 오전 10시 33분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앞서 공수처와 경찰은 지난 3일 1차 영장 집행 당시 수적 열세를 겪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소 6배나 증원된 경찰·공수처 인원을 투입해 영장 집행 마침내 성공시켰다.
1차 영장 집행 당시 투입된 인원은 경찰 특수단과 공수처를 합쳐 150명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100여명이 관저 경내로 진입했지만, 200여명의 경호처·군 인력과 대치하며 5시간 26분 만에 물러섰다. 하지만 이날은 수도권 경찰청 산하 안보수사대 및 광역수사단 수사관 등 1000여명 안팎의 인원이 투입됐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등도 현원 52명 중 대부분인 40여명이 현장에 투입됐다.
앞서 경찰은 지난 9일 수도권 4개 경찰청에 ‘수도권 안보, 광역 수사 기능 소속 수사관 동원 지시’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며 광수단 수사관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후 10일과 13일, 14일에 사흘에 걸쳐 구체적인 투입 경력 및 집행 방안 등을 논의했다. 특히 14일에는 수도권 광수단 지휘급과 공수처 검사들이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안보수사단에 모여 막바지 전략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선 경호처의 영장 집행 저지 행위가 이뤄질 경우 4인 1조로 경호처 직원을 체포하는 방안 등이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관저 인근 경비 인력도 500명 가량 늘었다. 앞서 1차 영장 집행 때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서울기동대 45개 부대 약 2700명이 경비 인력으로 투입됐으나, 이날 현장에는 서울기동대 54개 부대 약 3200명이 배치됐다. 이용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