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로 저감기능 효율 떨어트려
2심 재판부 “임의설정 해당…제재 적법”
지난 2020년 환경부가 벤츠 일부 차량이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했다며 제재를 부과한 벤츠 차량 중 하나. [환경부 제공]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이하 벤츠코리아)가 환경부가 부과한 776억 과징금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벤츠코리아가 차량 인증시험 때와 실제 주행 상태에서 배출가스 저감 시스템이 다르게 작동하도록 하는 등 교묘하게 조작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1-3부(부장 김우수·최수환·윤종구)는 15일 벤츠코리아가 환경부 장관과 국립환경과학원을 상대로 “과징금과 제재를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1심을 파기하고 전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자동차 배출가스로 환경과 인체 피해가 심각해지고 배출가스 인증 절차 및 과징금 부과기준이 엄격해지고 있다”며 “임의설정 사실을 숨기고 인증을 부정취득하고 수입·판매한 원고에게 제재를 가한 환경부에 재량권 일탈·남용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2020년 5월 환경부는 벤츠 경유차량 4종에 대한 배출가스 인증을 취소하고 이들 차량을 수입·판매한 벤츠코리아에게 7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배출가스 조작이 확인된 벤츠 차량은 3만 7154대에 달했다.
차량에는 배출가스 저감을 위해 질소산화물 환원촉매(SCR),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 등이 존재한다. SCR은 요소수를 배기관에 공급해 질소산화물을 질소와 물로 환원하는 장치다. 배출가스 재순환장치는 배출가스 일부를 연소실로 재유입시켜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줄이는 장치다.
한국에서 차량이 수입·판매되기 위해서는 배출가스 인증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적발 차량의 SCR과 EGR는 인증시험 때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벤츠는 ‘SCR 제어기능’과 ‘EGR 제어기능’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실제 주행환경에서 SCR과 EGR의 성능을 저하시켰다. SCR 제어기능은 질소산화물이 어느 정도 누적되면 요소수 분사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됐다. EGR 제어기능은 누적 운행 시간을 기준으로 특정 시간에 도달하면 EGR 가동률이 저하되도록 설정됐다.
환경부는 대기환경보전법과 환경부 고시가 금지하는 ‘임의설정’에 해당한다고 보고 제재를 내렸다. 임의설정이란 인증시험과 실제 주행환경에서 배출가스 관련 부품 기능을 저하시키는 것을 말한다. 실제 환경부 조사 결과 벤츠 일부 차량은 도로 주행 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이 실내 인증기준의 최대 13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츠는 환경부의 제재에 불복해 2021년 2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벤츠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심하게 증가하지 않아 임의설정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EGR 제어기능이 작동해도 SCR을 통해 배출가스가 어느정도 조절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칙을 강조했다. 결과가 아닌 EGR 제어시스템 자체를 기준으로 법 위반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항소심 재판부는 “배출가스 시험모드에 비해 일반적인 운전 및 사용 조건에서 저감장치 기능 저하가 발생하는지 살펴야 한다”며 “다른 제어로직 변수에 따라 EGR 가동률이 조절되어 배출가스 양이 상대적으로 감소되는 것처럼 보일 뿐 EGR 제어기능 또한 임의설정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환경부의 검사 방식에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임의설정이 교묘하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표준적인 검사 방식에 다소 변형이 가해지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 절차와 방식은 유럽 ‘EU 임의설정 평가 가이드라인’과도 부합한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대기환경 및 국민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정인증 및 인증 불일치 판매에 대해 보다 엄격하게 법령과 기준을 해석·적용했다”며 “향후 환경 행정에 실무상 지침 제공과 유사 행정사건, 형사사건 판단에도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