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인터뷰에서 속죄와 사죄
자기혐오의 시간 “음악이 있어 극복”
‘오징어게임2’에서 약쟁이 래퍼 타노스 역을 맡은 최승현 [넷플릭스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안녕하세요. 최승현입니다. 11년 만에 인터뷰를 하며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속죄하고 사죄하고 싶습니다.”
스스로도 “너무도 찬란한 20대였다”는 그는 ‘K-팝 레전드’ 빅뱅의 시절엔 볼 수 없던 모습으로 취재진과 만났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다.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고, 얼굴은 좀처럼 웃지 못했다. 이미 오전 10시부터 10여개의 매체와 1시간씩, 총 다섯 타임으로 진행된 인터뷰의 마지막 일정이었지만, 손 끝까지 내려앉은 긴장이 모두 지워지진 않았다.
이날의 인터뷰는 최승현이 대중 앞에 다시 서기 위해 꿰는 ‘첫 단추’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에서 약쟁이 래퍼 타노스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진행됐으나, 드라마 홍보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는 ‘오징어게임’ 홍보 기간 공식석상에서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징어게임’에 출연한) 선배님들의 모든 인터뷰 일정을 마친 지금 즈음이 드라마에 피해를 주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기”라고 판단해서다.
최승현은 “그간 소통 창구도 없었고 인터뷰에 나설 명분도 없었다”며 “다른 홍보를 위한 행사 자리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넷플릭스 측의 결정을 따라왔다. 다른 목적이나 계산적인 마음으로 나선 자리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의 언론 인터뷰는 2014년 개봉한 영화 ‘타짜-신의 손’ 이후 11년 만이다.
‘오징어게임2’에서 타노스를 연기한 최승현 [넷플릭스 제공] |
지난 시간들을 더듬으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20대에 찬란한 영광을 누렸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지만 너무나도 큰 실수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추락과 몰락을 마주하며 어둠의 끝까지 갔다”며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추락’이라고 말하는 긴 시간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논란은 논란을 쌓았다. 대마초 흡연, 대중과의 날선 대립, 은퇴 발표와 번복…. 그는 2017년 2월 의경으로 복무하던 중, 전년도 10월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가 뒤늦게 발각돼 재판을 받았다.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엔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환, 병역 의무를 다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종잡을 수 없었다. 2019년 7월엔 사회복무요원 소집해제 현장에 찾은 취재진을 외면했고, 그 시기 온라인에선 ‘자숙이나 해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하지 말고, 복귀도 하지 마라’는 네티즌의 댓글에 ‘저도 할 생각 없다’며 은퇴를 예고하는 날선 답글을 달았다. 2020년엔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한국에서는 컴백을 안 할 거다. 컴백 자체를 안 할 것”이라는 은퇴 시사 발언을 공격적으로 뱉어 논란이 일었다.
복귀할 것 같지 않던 최승현은 난데없이 세계적인 히트작 ‘오징어게임’ 시즌2에 출연을 확정지으면서 숱한 화제가 됐다. 캐스팅 당시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 ‘주연 배우와의 인맥 캐스팅’ 논란 물의를 빚은 배우의 자숙없는 복귀라는 질타도 상당했다.
그가 ‘오징어게임2’에서 맡은 역할은 힙합 서바이벌에서 준우승한 래퍼 타노스. 약에 취해 미쳐버린 ‘힙합 루저’의 모습이었다. 최승현은 “타노스는 저의 부끄러운 과오와 직면해야 하고, 전 세계적으로 이미지가 박제될 수도 있어 역할을 맡기까지 고민도 많고 망설여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캐스팅 이후 대중의 질타와 하차 요구를 마주하는 과정도 쉽지 만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이토록 크고 위대한 작품에 저라는 사람으로 인해 피해를 드리게 된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컸다”며 “하차를 고민했고, 감독님과 상의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최승현 [더씨드 제공] |
무사히 촬영을 마친 것은 그를 믿어준 황동혁 감독 덕분이었다. ‘오징어게임2’는 2017년 이후 최승현이 받아든 유일한 대본이었다. 2009년 드라마 ‘아이리스’ 이후 영화 ‘포화 속으로’, ‘타짜’ 등 크고 작은 작품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추락한 스타에게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최승현은 “10년간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거나 쳐다봐 준 적이 없었는데, 감독님께서 손을 내밀어 기회를 줬고 믿음을 주신 것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에 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뚜껑을 열자 그의 연기에는 호불호가 갈렸다. 최승현의 시간을 알고 있는 국내 대중에겐 타노스에게서 기시감을 느꼈다. 해외에선 ‘신선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숨통을 터줬다’는 반응이 나왔다. 최승현은 “(비슷한 역할에)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돌아봤다.
특히 캐릭터 해석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는 “찌질한 힙합 루저인 타노스는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는 광대같은 캐릭터라 생각했다. 절대 멋 부리거나 잘 생기게 나오려고 하지 않고 최대한 우스꽝스럽게 나오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과장된 표정, 그리고 발음을 뭉개는 대사와 랩 역시 최승현의 고심에서 나온 결과였다.
최승현이 해석한 타노스는 약에 취한 ‘힙합 루저’이자 ‘정신연령이 짱구 정도’인, 늘 하이텐션인 인물이다. 그는 “강력한 환각성 약물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자료를 찾아보고, 이들이 가지는 극도의 불안과 초조,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처럼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미국 남부 지역에서 많이 하는 ‘멈블랩’처럼 발음을 얼버무리는 랩을 시도한 것도 “약을 하는 사람들은 치아가 많이 손상돼 발음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극중 보라색 머리의 타노스가 끊임없이 삼키는 약은 “아폴로처럼 설탕 맛이 나는 녹는 사탕”이다.
지난 10년은 그에게도 그의 팬들에게도 어둠의 시간이었다. 길고 긴 터널에 갇힌 듯 답답함이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빅뱅은 탈퇴했고, 은퇴 결심도 하게 됐다. SNS에선 대중과 맞서고, 빅뱅의 팬까지 차단했다.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넣던 때의 일이다.
최승현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만큼 무너진 상황이 길었다”며 “눈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일어설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없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당시에 극단적인 선택도 했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자신의 행동이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는 걸 알게 된 후엔 스스로엔 대한 모멸과 수치, 자기 혐오가 마음 속에서 일렁이며 모든 것이 피폐하고 부정적으로 변했다. 그는 “그 또한 내 평생의 과오”라고 말했다. 은퇴를 언급한 것은 “힘들었던 시기, 판단력이 없는 상태의 경솔한 행동”이라며 “너무도 후회스럽고 죄송하다”는 마음이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빅뱅을 떠나게 된 것도 “너무도 염치가 없고 미안해서”였다. 그는 “그 시절 화려하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빅뱅은 언제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역사”라며 “나의 큰 실수로 20대를 함께 한 가족 같은 존재인 빅뱅이라는 이름에 피해를 줘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돌아봤다.
지난해 빅뱅 데뷔 18주년을 기념해 SNS에서 빅뱅 사진에 자신을 태그한 팬들의 계정을 찾아다니며 차단한 것도 ‘빅뱅 지우기’가 아닌 “헤어진 가족사진을 보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연말 세 사람이 완전체로 컴백한 모습을 보고선 “너무도 멋진 모습이었다”며 “나 혼자 해나가는 일에 대해 뭇매와 질타를 받는 것은 내가 감내할 일이지만, 빅뱅에 들어가 그들에게 더이상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빅뱅 합류에 대한 팬들의 바람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재결합을 원하는 팬들에게 희망고문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최승현 [더씨드 제공] |
빅뱅으로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음악하는 최승현의 모습은 다시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그가 힘든 시기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던 건 음악이 있어 가능했다. 공백기 동안엔 “음악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음악엔 지난 시간 쌓인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진솔하게 녹아났다. 그는 “어둠 속에 있을 때, 작업실에서 음악을 만들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며 “제가 듣고 싶어 만든 음악들이 쌓이며 저라는 사람의 존재 목적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어둠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노랫말들은 어둠의 터널 안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는 “점점 밝아지긴 하지만, 자기 혐오가 심할 땐 더 자극적이고 비관적인 노랫말을 썼다”며 “사죄하는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담겼다. 이 과정을 거치며 음악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당장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곧 앨범으로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1년 만의 인터뷰에 대해 그는 “지난 10년 동안 좋았던 뉴스를 한 번도 들려드리지 못해 사죄하는 자리”라고 했다. 어렵사리 첫 발을 내딛고 모든 인터뷰 일정을 마친 뒤에야 최승현은 조심스럽게 다시 웃어보였다. ’오징어게임‘ 시즌2 타노스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면서다. 화장실 살육전으로 결국 이른 죽음을 맞아, 시즌3에선 볼 수 없게 됐지만 그는 “타노스는 나쁜 것(약물)에 의존하는 캐릭터이니, 그 타이밍에 죽어 마땅하다”고 했다.
“지난 세월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또한 제가 겪어야 했던 시간이니까요. 그 때와 비교해 지금은 정신적으로 많이 단단해지고 건강해졌어요. 앞으로는 그 누구보다 건실하게 살아보겠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더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