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전북 고창군 선운사 천왕문 |
“악(惡)을 버리기보다 선(善)을 버리기가 더 어려운 것이니, 무슨 일이나 과도하면 폐단이 되는 것이다.”
석전(石顚) 박한영 스님의 말씀이라는데 자꾸만 곱씹게 된다.
영하 20도에 이르는 혹한이 몰아치고 서해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해서 겨울 눈꽃은 어떨까 하며 선운사로 발길이 향했다. 누군가는 오백년 이상 된 동백나무에서 붉은 봉오리째 뚝뚝 떨어지는 가슴 시린 동백꽃을 보러 간다고 하고, 누군가는 도솔천 따라 꽃대만 올라와 새빨갛게 피어난 꽃무릇을 보러 간다고 한다.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 |
여름철 앞마당의 배롱나무와 내장사 단풍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가을 단풍이 활짝 필 때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 고창의 선운사다. 말이 설경을 보기 위한 것이지 선운사에 가면 우선 지장보살을 만나야 하고, 신비의 전설 마애불도 참배해야 하고, 석천기념관과 백파대율사비, 장사송, 진흥굴, 용문굴, 낙조대 등 봐야 할 것이 수두룩하다.
도솔천 |
겨울철 짧은 해를 생각하며 선운사 앞에서 풍천장어로 점심 후 곧바로 올라갔지만, 계획에 없던 세 차례 차담 덕분에 해가 넘어간 뒤에야 절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총무국장 현적 스님, 도솔암 주지 성본스님, 참당암 선원장 법만 큰스님을 뵙는 호사를 누렸지만 짧은 시간의 미련은 두고 왔다. 기대했던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핀 산사 설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솔천에 맺힌 눈꽃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구름 속에서 참선 수도하여 큰 뜻을 깨친다”라는 ‘참선와운(參禪臥雲)’에서 유래된 선운사(禪雲寺)의 눈 쌓인 길을 걸으며 겨울 절간의 여유를 맘껏 누렸다.
선운사 지장보궁 |
선운사 지장보궁과 도솔암 내원궁, 참당암 지장전의 지장보살은 모두 머리를 두건으로 질끈 매고 있다. ‘천장, 지지, 인장’의 ‘삼장지장보살’을 모신 유일한 곳이 선운사여서 지장보살 기도 성지로 알려져 많은 불자가 찾고 있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이 구제되기 전까진 성불하지 않겠다고 해,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중생의 교화를 맡고 있는 자비의 보살이다.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
전북 고창군에 있는 선운사(禪雲寺)는 조계종 제24교구의 본사로서, 원래 이름이 도솔산이었던 선운산(355m) 아래 평지에 넓게 자리하고 있다. 절 앞 도솔천의 극락교를 넘으면 불이문이요, 도솔천 따라가다 보면 참당암과 도솔암이 있고 그 끝에 내원궁이 있다. 도솔천은 미륵보살이 머무는 내원과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외원으로 구성된 불국 세계다.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하고 검단 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고려 말, 조선 초에 3000여 명의 승려가 머물 정도로 크게 중창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거의 소실돼 1613년부터 재건을 시작해 현대에 이르렀다.
진흥굴 |
백제 위덕왕 시대 백제 땅의 사찰 창건에 신라 진흥왕이 등장하는 재밌지만 웃을 수 없는 설화가 전해온다. 신라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린 날 미륵 삼존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감동해 선운사를 세웠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도솔암에서 내려오는 길에 진흥왕과 왕비, 공주가 함께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있다. 후대 통일신라가 정통성을 확립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해서 백제 승려 검단 선사에 진흥왕을 결합해 창건 설화가 만들어진 듯하다.
선운사 대웅전 |
더불어 전해오는 설화는 서해 죽도포에 돌배가 떠내려와서 올라가 보니 배 안에 삼존불상과 탱화, 옥돌부처, 금옷 입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품 안에 “이 배는 인도에서 왔으며 배 안의 부처님을 인연 있는 곳에 봉안하면 길이 중생을 이익이 있게 하리라”는 편지가 있었다. 이에 검단 선사가 악행을 저지르던 이무기가 살고 있는 큰 연못을 메워 절을 지었고 진흥왕은 재물과 장정을 보내 도왔다. 연못에서 빠져나온 이무기가 서해로 도망가면서 바위를 뚫고 나갔다는 용문굴이 있다는데 용문굴, 낙조대, 수리봉등은 도솔암 내원궁에서 먼발치로 바라보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여기에 더해 절을 지을 때 산적들이 방해했으나 검단 선사가 이들을 교화해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쳐 생업을 삼게 했다. 수백 년 전부터 해안가에선 소금을 만들어 보은염(報恩鹽)이라고 해 선운사에 시납했다는 기록도 있다.
선운사 대웅보전과 육층 석탑 |
정유재란 때 모든 것이 불타 쑥대밭 된 폐사지에 외롭게 서 있었던 9층 석탑(지금은 6층 석탑)은 여전히 대웅전을 지키고 있다. 왜란 이후 재건된 선운사 대웅전, 만세루, 참당암 대웅전 등 전각들과 세 곳에 있는 지장보살, 도솔암 위쪽의 마애불 등은 보물로 지정됐다.
선운사 대웅보전 비로자나불 |
그리고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면서 손가락 검지를 모으고 있는 비로자나불은 대적광전이 아니고 대웅보전에 있다. 대신 석가모니불은 영산전에 모셔져 있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지장보살 좌상은 일제강점기에 도난당했으나 일본인들이 2년 만에 자진 반환해 선운사로 돌아오게 된 특별한 사연이 기록으로 남겨 있다.
선운사 불교 체험관 |
19세기 전반만 해도 50여개나 되었다는 부속 암자는 현재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참당암과 우리나라 3대 기도처라 전해지는 내원궁이 있는 도솔암 등 4곳만 남아있다. 산책 코스라는 도솔암 가는 길에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석전기념관과 불교문화 체험관이다. 석전 스님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암자에서 오랜 시간 보내고 내려오다 보니 이미 폐관 시간이라 아쉬움만 남겼다.
장사송 |
좀 더 올라가면 600여년 이상 된 잘생긴 소나무 장사송(천연기념물)이 반겨준다. 그 옆엔 화산활동과 침식작용으로 생긴 널따란 진흥굴이 있는데,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곳으로 지금은 무속인들이 기도처로 사용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곳 가까이에 장승과 석인상 불상이 혼합되어 민속신앙으로 변한 민불(民佛)을 보고 싶었는데 위치를 찾질 못하고 말았다.
참당암 대웅전 |
조금 더 가면 참당암 가는 길과 도솔암 가는 길로 나뉘어 참당암 방향으로 10여분 올라가면 산속 평지 넓은 마당 편안해 보이는 곳에 ‘죄를 뉘우치고 속죄하는 곳’이라는 참당암(懺堂庵) 대웅전이 오래전부터 사찰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
지장전에 있는 ‘석조지장보살좌상’은 둥근 얼굴에 투박한 모습이 다른 2곳의 금동지장보살과는 또 다른 후덕함이 느껴진다.
도솔암 |
처음 찾는 암자였지만 암자를 둘러보는 일보다는 선운사 주지도 지냈고 불교환경연대 일도 맡고 있는 법만 큰스님과 차담하며 선운사 역사를 듣는 재미가 더 쏠쏠했다.
선운산 정상 부위 도솔암에 오르면 선운산 여러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함이 있다. 찻방에서 눈 덮인 선운산 기운을 받으며 차를 마시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내원궁 가는 길 |
도솔암 본전인 극락대전을 지나 마애불 못미처 뒤쪽 산 돌계단 길을 오르니 기암절벽과 깊은 계곡 사이 거대한 바위 위에 내원궁이 보인다.
도솔암 내원궁 |
‘도솔천 내원궁’ 전각 앞에 서니 선운산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고 건너편 수리봉(천마봉)과 낙조대도 시원하게 들어온다. 전국 제일의 지장 기도처다운 산 기운이 느껴진다.
내원궁 금동지장보살좌상 |
내원궁 안에는 높이 1m 정도의 왼손에 법륜을 든 고려시대 금동지장보살좌상이 있다. 조각상으로는 드물게 고려 말 5대 걸작품 중 하나라고 할 정도로 귀족적이며 세련된 일면을 보여준다. ‘도솔천 내원궁’은 미륵보살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이곳에는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고 미륵보살은 하생해 아래쪽 바위 면에 마애석불이 돼 있다.
동불암 마애불 |
도솔암 나한전을 지나 40m가 넘는 깎아지른 거대한 암벽에 높이 17m, 너비 3m의 마애불은 규모가 커서인지 연화대좌 위의 하체는 큼직한 두 발을 선각했다. 그 외는 선각의 흔적만 남긴 채 미완성인 듯 부족함이 엿보인다. 상체도 치켜 올라간 눈, 우뚝한 코, 쑥 내민 입술 등 익살스럽기까지 한 표정도 그러하다.
마애불은 백제의 위덕왕이 검단 선사에게 부탁해 암벽에 불상을 조각하고,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또 명운을 다해가던 고려 말 지방 호족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열어 줄 수호신을 새기면서 당시의 느낌을 바위에 새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부처의 부드러움이나 온화함보다는 위압감을 주는 마애불 옆에는 오직 잘 어울리는 한 그루 소나무만이 옆을 지키고 있었으나, 최근 커다란 전각(미륵전)이 지어져 앞산을 막고 있다. 마애불의 명치 부근의 감실에 신비스러운 비결이 숨겨져 있고 그 비결이 세상에 나오는 날에는 한양이 망하며, 만일 그 비결을 꺼내기 위해 손을 대면 벼락에 맞는다는 전설도 함께 내려왔다.
전라감사 이서구가 꺼냈다가 벼락이 치는 바람에 놀라서 다시 넣고 회로 봉해버려 마애불 가슴에 회칠로 땜질한 4각형 모양이 있다고 한다. 그 뒤 동학의 무장접주 손화중이 스님들을 꽁꽁 묶고 비결을 꺼내 갔고 이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 예언대로 한양은 망했다고 한다. 갑오농민전쟁의 서막을 장식하는 전설이 됐다. 동학혁명군의 첫 대중 집회가 마애불 앞에서 열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총대장 전봉준과 그를 보좌한 김개남, 손화중이 술잔을 높이 들어 맹약했던 곳이 이곳이라고 해, 호남 미륵신앙의 성지라고도 불린다.
도솔천 동백나무 |
선운사 도솔천 계곡은 동학농민전쟁 당시 수많은 농민이 포위돼 관군에게 희생된 곳이다. 가을 도솔천의 붉디붉은 상사화는 그들의 영혼이며, 시들지 않은 채 뚝뚝 떨어지는 처연한 동백꽃은 덧없이 참수당한 젊은 동학도들의 넋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중생을 끝까지 구제하겠다는 선운사 지장보살의 원력이 구천에 떠도는 원혼들의 한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석전기념관 |
석전 스님은 전북 곳곳에 대한 인연은 많지만 선운사는 방문 기록밖에 없음에도 도솔암 가는 길목 초입에 2년 전 건립한 ‘석전기념관’이 있다. 선운사에서 매년 추모 다례제를 봉행하고 있다. 석전 정호스님(1870~1948)은 전북 완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한용운 선생과 함께 한성 임시정부 전북 대표로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과 불교 개혁운동을 한 민족주의자였다. 순창 구암사의 강백 및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장을 지낸 교육자로서 불교의 환골탈태를 위해 젊은 인재교육의 필요성을 주창하며 조선불교 근대화의 길을 열었다. 근대문학의 산파 역할을 한 문인이기도 했고 해방 후 조선불교 초대 교정(현 종정)으로 추대된 전북을 대표하는 고승이다.
백파율사비 |
선운사 부도밭 입구에는 명필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직접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는 ‘선운사 백파율사비’ 표지판이 눈에 띈다. 비석 앞면에는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大機大用之碑)’, 뒷면에는 자잘한 글씨로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대기대용(大機大用)은 ‘깨달음이 원숙한 경지에서 나오는 자유자재한 경지’를 말한다. 비문은 백파(1767~1852)가 입적한 순창 구암사에 보관되다가 1958년 백파가 출가한 선운사로 와서 지금의 비석이 세워졌다.
선운산가비 |
실학을 불교에 수용했던 대흥사 초의선사와 교(敎)를 중시한 백파율사는 선(禪)과 교(敎)를 두고 불교사에 빛나는 논쟁을 했고 사후 100여 년 동안 제자들이 논쟁을 이어갔다. 불교에도 박식하고 초의와 가까웠던 추사 김정희는 백파와 격한 논쟁을 펼치다가 친밀한 벗이 됐다.
선운사 전경 |
추사는 백파에게 앞으로 크게 될 후손에게 전하라며 ‘석전(石顚)’ 아호를 지어줬고 백파의 일곱 번째 법손인 박한영 정호(鼎鎬) 스님이 받게 돼 선운사와 연을 맺지 않았을까 싶다.
백파와 석전 스님은 순창 구암사에서 당대 최고의 교학자로서 화엄종(華嚴宗) 법맥을 이어가며 화엄종주(華嚴宗主)로 위치했고 이러한 법맥이 선운사로 옮겨왔기 때문인지, 선운사 대웅보전에는 화엄경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특이함을 갖고 있다.
도솔천 옆 암벽에 자라는 높이 15m의 덩굴식물 ‘송악’은 천연기념물이다. |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는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자연 성곽이라는 고창읍성이 있다. 두툼한 소나무들이 사열한 오솔길을 걷고, 크고 시원스러운 왕죽 대나무밭에서 인생사진 하나 남기는 것도 좋겠다. 지석묘 442기가 분포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매산리 고인돌군을 가보는 것은 어떠할까.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사 나들목(IC)에서 들어가면 복분자 클러스터, 풍천장어 전시홍보관이 반겨 준다. 복분자주와 풍천장어의 고장 고창을 알리듯 선운사 입구에도 풍천장어 식당들이 즐비하다.
선운사 극락교 |
선운사 입구에 있었던 ‘선운사 동구’를 쓴 미당 서정주의 시비는 친일과 군사정권을 찬양한 죄(?)로 철거된 듯 보이지 않는다. 대신 천연기념물인 높이가 15m나 되는 덩굴식물 ‘송악’이 도솔천 옆 암벽에 기대어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한껏 뽐내고 있다. 봄이 오면 선운산 수리봉과 낙조대에 올라 칠산 앞마다 명품 낙조를 감상하고, 나무에서 피고, 꽃 봉오리 채 떨어져 땅에서도 피고, 애틋한 가슴에서도 피어 세 번 꽃을 피운다는 대웅전 뒤편 동백숲에서 감상에 젖어보리라.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서러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그 꽃 말이에요.♪♬”
송창식의 노래를 들으며, “4월 말, 5월 초에 답사처를 상의해 오면 서슴없이 고창 선운사를 가보라고 권한다”라는 유홍준 교수의 말도 되새겨 보리라.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