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68%, 투자 결정 못하거나 계획 無

한경협 500대 기업 조사 결과
투자계획 수립한 기업, 확대보다 축소가 많아
“세제등 인센티브로 적극적인 투자 유도해야”


탄핵정국 장기화로 주요 민생·경제 법안의 통과가 지연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체감하는 불확싱성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다수의 대기업은 투자 결정을 못 내리거나 검토했던 계획도 철회하고 있는 형편이다.

16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122곳 중 56.6%는 ‘내년도 투자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투자 계획이 없다’는 응답은 11.4%였다. 이 조사는 계엄·탄핵 이전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부정 기류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투자계획이 미정인 기업들은 그 이유로 조직개편·인사이동(37.7%), 대내외 리스크 영향 파악 우선(27.5%), 내년 국내외 경제전망 불투명(20.3%) 등을 꼽았다. 내년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39곳) 중에서는 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축소하는 경우(28.2%)가 확대하는 경우(12.8%)보다 많았다.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한 비율은 59.0%였다. 재작년 조사까지만 해도 ‘투자 확대’(28.8%)가 ‘축소’(10.2%)보다 많았는데 1년 만에 역전된 것이다.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계획이 없는 이유로는 내년 국내외 부정적인 경제전망(33.3%), 국내 투자환경 악화(20.0%), 내수시장 위축 전망(16.0%) 등이 지목됐다.

아울러 전체 응답 기업의 77.8%는 내년도 설비투자의 주된 형태에 대해 기존 설비를 유지·개보수하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적극적인 설비 확장은 18.9%, 구조조정에 중점을 둔다는 답변은 3.3%였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과거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기업 투자가 위기 극복의 열쇠가 돼왔는데 최근에는 기업들이 투자 확대의 동력을 좀처럼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경영 불확실성을 크게 가중하는 상법 개정 논의를 지양하고 금융·세제 지원 등 과감한 인센티브로 적극적인 투자를 유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생불안 해소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제·민생과 직결된 세제 관련 법안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경제계의 제언이 나왔다.

한경협은 지난 13일 조세특례제한법·관세법 개정 법률안 등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7건을 ‘조세개편 과제 7선’으로 제시했다. 우선 조세특례제한법을 신속히 입법해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한경협은 촉구했다. 신용카드 전통시장 사용액에 대한 소득 공제율을 확대하고, 소득공제 일몰 기한을 연장하는 내용이다.

아울러 한경협은 반도체 투자 등을 활성화하기 위한 입법에 서둘러 산업·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투자세액공제 유형에 반도체를 신설하고 통합 투자 세액 공제율을 높이는 한편 국가전략 기술에 인공지능(AI), 미래형 운송수단 등을 포함해 세액 공제를 지원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신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한경협은 주장했다.

한경협은 “주요국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국가안보 전략 관점으로 바라보며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해 자국 기업·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반면 한국은 보조금은 고사하고 세액공제 확대 등 기본적인 지원책마저 지연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퇴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협은 또 중소·중견기업 임시 투자 세액공제 적용 기간과 항공기 부품 관세 면제 기간을 연장하는 법안(관세법 등)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또 건설사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공유숙박 국외 사업자 탈세를 예방하는 법안(부가가치세법 등)도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으로 제시했다.

이상호 본부장은 “수많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은 내수 부진과 소비심리 악화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고, 기업들은 정치적 사태, 트럼프 신 행정부 출범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며 “국민과 기업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회는 최소한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한 법안만이라도 설 연휴 이전에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경원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