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스톱된 민생·경제 법안 [이슈&뷰]

국정협의체 실무협상 개최 보류
반도체법 ‘주 52시간 예외’ 이견에
전력망법·고준위법 처리도 지연
野 추경 요구에 ‘K칩스법’ 발목
與 물밑서 ‘선별 추경’ 대안 모색

국회 계류 중인 주요 민생·경제법안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 여파의 직격타를 맞았다. 입법 논의를 되살리기 위한 여야 대화가 중단됐고, 입법의 키를 쥔 거대야당은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달 넘게 이어진 민생·경제법안 표류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 중인 주요 민생·경제법안은 10여건에 달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격화된 여야 정쟁에 상임위 심사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여야 지도부 손에 넘겨졌다. 여야 지도부는 이달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가 참여하는 국정협의체의 실무협상에서 민생·경제법안 협상을 재개했지만, 법안들은 또 다시 무산 위기에 놓였다. 이번주 중 추가 실무협상을 진행하려던 당초 계획과 달리, 윤 대통령 체포 이후 여야는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관련기사 4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인 ▷반도체특별법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 ▷해상풍력발전법은 장기간 계류된 민생·경제법안들이다. 여야가 처리 필요성에 공감하며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비상계엄 사태 이후 관련 논의는 한발도 떼지 못했다.

특히 반도체특별법에 포함된 ‘주 52시간 근무 예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을 둘러싼 이견은 최근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반도체특별법과 3개 법안을 연계해 협상하자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큰 틀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진 나머지 3개 법안의 발목까지 잡힐 수 있다는 우려다. 국가기간전력망 특별법과 고준위 특별법은 21대 국회에서도 정쟁 속에 처리가 무산되며 최종 폐기됐는데, 22대 국회에서도 정쟁의 뒷전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됐으나 야당의 감액안 단독 처리로 본회의에 오르지 못한 ▷상속·증여세법 개정안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관세법 개정안 등 세제 개편 관련법도 계류 중이다. 여기에는 중견·중소기업 가업 상속공제 확대, 주주 환원 확대 기업에 대한 법인세 세액공제, 반도체 기업에 대한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5%포인트(p) 상향하는 일명 ‘K칩스법’ 후속 입법 등이 포함돼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 여야 간사는 당초 14일 전체회의를 열어 계엄 사태에 대한 현안질의를 진행한 뒤 세제 개편안을 재상정하는 안을 서로 주고 받았으나, 민주당이 세제 개편안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회의 개최가 무산됐다. 국민의힘은 국정협의체 실무협상을 통해 논의의 불씨를 되살리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추경 관련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민주당이 앞서 실무협상에서 제시한 ▷상법 개정안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온플법)에 대한 국민의힘의 반대도 넘어야 할 산이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소액주주까지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고, 지난해 티메프 사태 후속 입법인 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한 독과점 행위를 규제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여당은 앞서 이 법안들에 대한 반대 또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민생·경제법안 입법 논의는 민주당의 추경 드라이브에 또 다시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완료된 전날(15일) 오후 진행된 당 전국소상공인위원회 발대식에 보낸 서면 축사에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화폐 발행에 적극 동참하고 있고, 중앙정부의 지원도 요구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소비 진작의 효과가 있는 지역화폐 발행을 위한 추경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표’ 정책으로 불리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는 지난해 여야의 2025년도 예산안 증액 협상이 최종 불발되며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막판 협상 당시 민주당은 정부·여당에 1조원의 지역화폐 예산 편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민생경제회복단은 앞서 지역화폐와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지원, 청년 일자리 예산 등을 위한 ‘최소 20조원’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향후 재개될 국정협의체 실무협상에서도 지역화폐 및 민생회복지원금 예산 확보를 위한 추경 편성을 한층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책위 핵심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추경에 포함돼야 할 것은 소비 진작을 위한 지역화폐나 민생회복지원금”이라며 “여당이 편성에 동의하지 않아 구체적인 규모에 대한 얘기는 (실무협상에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생회복지원금은 ‘전 국민 1인당 25만원’으로 알려진 22대 총선 민주당의 대표 공약이다.

민주당은 ▷지역화폐법 개정안 역시 국정협의체 협상테이블에 올린 상태다. 지역화폐에 대한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을 의무화하는 이 법안은 지난해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했으나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에 부딪혀 최종 폐기됐던 것이다.

국민의힘에서는 그간 “오로지 이재명 대표의 지역화폐 포퓰리즘 공략을 위한 ‘이재명 대선용 추경’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권성동 원내대표)”, “무차별 현금살포 포퓰리즘 중독병(김상훈 정책위의장)” 등 추경 반대 입장을 밝혀 왔다. 정부·여당은 당장의 추경 대신 올해 예산안의 67%(398조원)를 상반기 조기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물밑에서는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인구소멸로 인해 지역경제가 침체된 일부 지역에 한해 지역화폐 발행 예산을 편성하는 ‘인구소멸지역 추경’이 대표적이다. 일종의 ‘핀포인트’ 추경으로, 최근 당정협의회를 포함한 비공개 회의에서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당에서 주장했던 선별적 복지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하던 중 언급됐던 것”이라며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의원은 “추경 문제로 다른 민생법안 처리까지 막힐 경우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면서도 “한번 (추경) 물꼬가 터지면 순식간에 금액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진·박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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