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 정부 지원 받는 경쟁국…K-반도체는 ‘맨손’

중국 메모리·TSMC 위협에 ‘K-칩스법’ 절실

반도체공장 미국 일본 4개 만들 때 한국은 1개

용인 클러스터 속도위해 전력망법 필수

“경쟁력 사활 걸린 법안 여야 힘 합쳐야”

 

용인반도체클러스터 SK하이닉스 조감도 [SK하이닉스 제공]

 

주요 민생·경제 법안 처리가 ‘올 스톱’되면서 반도체를 포함한 국내 산업계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처지다. 각 정부의 정책적, 경제적 지원을 등에 업은 주요 경쟁국과 비교하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맨손’과 다름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당장 다음주 트럼프 정부 2기가 출범하며 글로벌 불확실성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재계는 정부의 규제 완화 및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올해 반도체 공장 미·일 4개 만들 때 한국은 1개=16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새롭게 건설되는 반도체 팹(생산라인)은 총 18개다. 이중 한국에서 예정된 신규 프로젝트는 단 한 개로, 3월 착공이 예정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SK하이닉스의 첫 번째 반도체 팹 뿐이다. 미국과 일본이 4개로 가장 많았고, 중국과 유럽·중동이 3개로 그 뒤를 이었다. 대만은 2개였고, 동남아와 한국이 각각 1개로 집계됐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토지수용 및 전력과 용수 공급 문제로 2019년 부지 선정 후 4년 가까이 첫삽도 뜨지 못했다. 2022년 6월 겨우 착공식을 열고 부지 조성에 들어갔고, 이르면 내달 SK하이닉스의 첫 반도체 팹 착공을 시작할 전망이다.

120조원을 투자한 SK하이닉스로서는 착공까지 약 6년을 기다린 셈이다. TSMC의 경우 미국과 일본에서 신공장 착공부터 양산까지 3~4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글로벌 곳곳에서 신공장을 확충하며 공격적으로 캐파(생산능력) 증가에 나서고 있다.

▶“중국 메모리·대만 파운드리 사이서 샌드위치 신세”=반도체 업계에서는 용인 클러스터의 조기 가동을 위해 전력망확충 특별법 통과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전력망확충 특별법은 국가첨단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력망 구축 사업 인허가 절차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글로벌 경쟁 강화로 생산시설 확충이 ‘속도전’이 된 만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직접 보조금 지원 등을 포함한 반도체특별법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일본, 대만 등 주요 경쟁국이 많게는 수십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자국 내 반도체 산업 부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정작 ‘원조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어 해외 기업 유치는 커녕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신규 팹 투자 진행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한국 반도체는 중국 메모리의 추격과 대만 파운드리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세계 메모리 시장에서 중국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10%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장격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서 부진하면서 그 타격은 더 커졌다. TSMC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격차는 55%포인트를 넘는다.

여당은 반도체특별법, 전력망확충 특별법,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방폐장법), 해상풍력 특별법 등을 미래 먹거리 4법으로 삼고, 조속한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여야간 입장차가 큰 반도체특별법의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 예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과 관련해 이번주 재개되는 여야 국정협의체 실무협상에서 타협점을 찾겠다는 목표다.

재계에서는 지금이라도 경제 법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환영의 의사를 보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만 법적 지원 제도가 미비해 기업들의 경영 애로사항이 큰 상황”이라며 “다소 늦었지만, 이제라도 여야가 합의점을 이뤄내 기업들의 사활이 걸린 중요 경제 법안 통과에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효과로 작년 ICT 최대수출…올해는 ‘글쎄’=‘효자 역할’을 하고 있는 반도체 덕분에 우리나라의 지난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수출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4년 연간 및 12월 ICT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ICT 수출액은 2350억5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5.9% 증가한 역대 최대치였다. 지난해 12월까지 전년 동월 대비 ICT 수출액이 14개월 연속 증가했고, 8월 이후부터는 5개월 연속 월 수출액이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는 인공지능(AI) 관련 수요 증가로 역대 최고 실적인 1420억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42.5% 늘어난 수치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고부가 품목 수출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882억9000만달러로 71.8% 늘어났다. 시스템 반도체 수출액도 첨단 패키징 수출 확대로 역대 두 번째 높은 실적인 478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휴대전화 완성품 및 부분품은 144억달러어치가 수출되며 지난해 10%대 성장세를 나타냈다.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에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106억달러어치 수출되며 103.7%에 달하는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디스플레이는 수출액 증가율 0.8%를 기록, 전년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체된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 ICT 분야 수출이 줄었던 미국과 베트남에서 지난해에는 각각 31.9%, 14.4% 수출액이 증가하며 역대 최고 수출액을 달성했다. 중국은 수출액이 25.3% 늘었고 일본은 9.7% 감소했다. 지난해 ICT 분야 수입액은 1432억 달러, 무역 수지는 918억 달러 흑자로 잠정 집계됐다. 한편, 지난해 12월 ICT 분야 수출액은 226억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24.2% 늘었고, 수입액은 133억 달러로 21.8%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12월 무역수지는 93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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