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보다 더 센 경고 나왔다” 국제 기관 ‘변심’에 한국 최악 상황도 불가피

무디스 “입법부 갈등 지속에 신용등급 부정적”
S&P ‘정치적 혼란이 부동산 등에 부담’ 진단
경제·금융당국 수장도 대외 분위기 변화 감지


우리나라의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가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진단이 글로벌 신용평가사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1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돼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에도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안정적이라고 봤던 기존 글로벌 평가에 변화가 생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내 정치적 혼란이 장기화되고 있어서다.

국가 경제를 이끄는 수장들도 대외신인도 하락에 대한 우려의 메시지를 연이어 내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은 한 번 하락하면 회복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해 당장 고환율 급한불은 껐지만, 장기적인 정치 불확실성에 최악의 경우 국가 신용등급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17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최근 국내 경제에 대해 “계엄은 단기에 그쳤지만 높은 불확실성과 입법부 갈등 등 반향은 지속되고 있다”며 “강력한 법치주의로 인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통화재정 정책을 포함한 다른 기관들의 기능이 작동 중이지만, 경제 활동 교란 장기화, 소비 및 기업 심리 약화는 신용등급에 부정적(credit negative)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고금리, 부동산 침체, 가계부채 부담 등으로 연초 소비가 둔화되겠으나 하반기에는 금리인하가 회복을 촉진할 전망”이라면서도 “정치적 불확실성 장기화는 하방 리스크(위험)”라고 꼬집었다.

무디스의 수석 신용 책임자인 아누슈카 샤도 블룸버그를 통해 “장기간의 정치적 갈등은 경제적 신뢰를 저하하는 등 신용등급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3대 신용평가사인 S&P도 전날 정치적 혼란이 부동산 시장 심리와 거래 활동에 부담을 주고 있으며 대출수요를 더욱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한국의 제도적 회복력에 주목하며 국가신용등급이 여전히 안정적이라고 봤던 한 달여 전과 사뭇 다른 진단이다. 무디스 측은 앞서 지난달 12일 최상목 현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경제 하방 리스크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없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 “한국의 견고한 법치주의가 높은 국가신용등급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 권한대행, 김병환 금융위원장. [기재부 제공]


이처럼 글로벌 신용평가사가 한국의 경제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는 데 대해 경제·금융당국 수장 사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아침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에서 “미국 신정부 출범 등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큰 만큼, 각 기관이 미국 신 정부 정책 및 국제금융시장 동향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금융·외환시장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데 총력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이어 “대외신인도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도록 국제금융협력대사 주관 한국경제설명회(IR)를 개최하는 등 각 기관에서 국제사회에 우리경제의 견조한 펀더멘털을 적극 설명할 것”을 주문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외국 투자자나 신용평가사의 시각이 굉장히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과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탄핵 시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등 일련의 상황과 관련해 “대외신인도 문제에 대해 많은 대외 채널을 통해 ‘정치와 경제가 분리돼 잘 간다고 했는데 이제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와서 대답하기가 굉장히 곤란했다”면서 “대외 분위기도 좀 바뀌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프랑스의 사례를 들며 국가신용등급에 대한 우려를 전한 바 있다. 무디스는 지난달 ‘정치적 분열’을 이유로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췄다.

이 원장은 당시 “국가신용등급 재평가 시기는 아니지만 언제라도 이벤트가 있을 때 우리에 대한 국제 시각이 냉정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자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국채 발행 금리가 올라 해외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외국자본 이탈로 환율까지 급등하는 등 경제 전반에 여파가 심각하다. 1%대 저성장이 예고된 상황에 극심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여지도 크다. 이에 하루빨리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해 경제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가신용등급이 S&P 평가 기준 AA-에서 B+로 10계단 급락했으며 18년이 흐른 2015년에야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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