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스마트폰, TV…거세지는 ‘차이나어택’ [이슈&뷰]

구매력 갖춘 대체시장으로 매력적
中기업들 국내 시장 전방위 공세
트럼프 리스크·中성장 둔화 영향
美 우회진출 위한 생산기지 전략



중국 대표 기업들이 주요 산업에서 우리나라 기업을 추격할뿐 아니라 아예 앞마당까지 진출해 국내 시장 공습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IT·가전, 생활용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이 가성비는 물론 기대 이상 품질의 제품으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한국 진출은 단순히 시장 확대를 넘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치밀한 전략적 판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샤오미는 2016년 한국 총판을 운영한지 9년 만에 한국 법인을 설립했다. 이미 국내 가전 시장에서 중국 로보락 등이 성과를 내는 가운데 본격적으로 한국 진출 신호탄을 쐈다. 중국 전기차 업체 BYD(비야디)는 국내 동종 전기차보다 1000만원 가량 저렴한 전기차로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이미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온라인 커머스, 미니소 등 오프라인 유통 업체가 기세를 올리는 가운데, 중국 기업 공세는 전방위적으로 거세질 전망이다. ▶관련기사 3면

중국 내수 부진과 통상마찰 본격화에 중국 현지 기업들은 ‘대체 시장’으로서 한국을 더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집권 이후 미국의 대(對) 중국 제재가 늘 것으로 예상되며 주요국 진출을 서두르면서다. 특히 지정학적 측면에서 ‘전략적 시장’으로 꼽히는 한국 시장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이런 대내외적 이유로 이들 기업은 한국에 판매 법인을 내거나 매장을 늘리고 있다. 또 한국 시장만 놓고 봐도 인구밀도가 높고 소득수준이 높은 소비자가 몰려 있어, 투자비 대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조건으로 평가된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중국 입장에서도 인구 5000만명 이상 규모의 시장이 흔치는 않아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 기업은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은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면 선진국 시장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커,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단 분석도 나온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허브’로 활용하려는 경향도 두드러진단 설명이다. 특히 샤오미, 하이센스 등 중국 전자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이런 점에 기인했다.

한국을 ‘생산기지’로 삼은 경우 더욱 복잡한 계산이 얽혀 있다. 미·중간 정치·경제 갈등이 심해지며 중국계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던 중국은 현지 규제 강화, 지정학적 변수 등이 복합 작용하며 기업들의 ‘차이나 리스크’가 늘고 있다. 이에 탈중국을 감행하는 곳이 늘고, 중국 밖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움직임이 잇따라왔다.

가령 중국 지리그룹 계열 전기차 기업 폴스타가 올해 하반기부터 부산 공장에서 생산을 결정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중국보다 높은 인건비를 감내하는 이유는 한국의 자유무역 네트워크를 활용해 세계 시장에 뛰어들겠단 심산이다. 한국은 중국과 인접해 상대적으로 물류비가 저렴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들과 무역장벽이 낮다. 단순히 한국 판매량 규모만 본 게 아니라 프리미엄 모델 중심 수출을 위한 공급망까지 눈여겨본 것이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령 중국 지리그룹이 폴스타를 한국에서 생산하는 이유 중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하겠단 것”이라며 “한국을 기반으로 해서 해외 시장으로 나가려는 의도가 크다”고 말했다. 앞서 중국 지리자동차그룹 산하의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는 한국 공장에서 생산을 결정했는데, 한미 FTA에 따라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면 관세 측면에서 유리하단 점을 고려한 것으로 파악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국 업체의 한국 시장 잠식이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단 우려는 갈수록 커진다. 여전히 중국 브랜드에 대해 ‘싼 게 비지떡’이란 인식이 있지만, 이커머스나 로봇청소기 등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조성대 실장은 “소비자도 이미 범용 가전 제품은 중국산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분야에서도 젊은층에게 어필하며 중국산의 침투와 시장 확대 가능성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약 10년 전 중국이 ‘중국제조 2025’ 정책을 시작하며 가성비 좋은 중국 제품을 두고 대륙의 실수란 말이 유행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소비자에겐 대륙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않느냐”며 “불경기 속 저가에 고품질로 무장한 중국 제품에 점령당할 판”이라고 말했다. 고은결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