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차스테인의 팬이라면…이 영화 ‘메모리’[리뷰]

22일 개봉…미셸 프랑코 감독 영화

인간의 삶에서 ‘기억’의 의미 되물어

 

영화 ‘메모리’는 제80회 베니스영화제, 제48회 토론토영화제, 제67회 BFI 런던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명실상부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이 돌아온다. 22일 개봉하는 미셸 프랑코 감독의 작품 ‘메모리(Memory)’를 통해서다. 그는 어린 시절 성폭력을 겪고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실비아 역할로 분했다.

그간 차스테인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인 ‘헬프’에서의 금발머리의 백치 미녀 ‘셀리아’, ‘미스 슬로운’에서 냉철한 지략가 ‘슬로운’, ‘제로다크서티’에서 레이벤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CIA요원 ‘마야’ 모두 사랑스럽거나 혹은 멋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연기한 실비아는 지금까지 맡아왔던 역할과 결이 다르다.

실비아는 이 작품에서 우울하거나 어두운 기운을 뿜어낸다. 차스테인은 그의 빨간머리를 더욱 부스스하게 방치하고, 핏기 없는 얼굴에 화장도 하지 않은 채 늘 똑같은 무채색의 야상 점퍼를 입고 나온다. 집에 돌아오면 보안 시스템부터 가동하고 3중 잠금장치로 문을 꼭꼭 닫아버린다. 사람들과 스몰톡을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사교성이라곤 없는 그와 함께 사는 딸 애나가 어떻게 밝게 자랄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100분을 함께 하기에 썩 유쾌한 인물이 아님에도, 차스테인은 스크린에 비춰진 그의 연기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정말 아이리쉬 계통의 빨간머리 백인 여자 ‘실비아’가 미국 어느 도시에서 저토록 우울하게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삶이 궁금해진다.

어린시절의 ‘기억’이 끝없이 반복재생시키며 피폐한 삶을 사는 실비아는 가까이 사는 여동생, 여동생의 남편에게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또는 아픈 손가락처럼 여겨진다. 실비아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불편한 내색을 최선을 다해 숨기곤 한다.

실비아의 제한적인 인간관계에 ‘기억’을 잃은 젊은 치매 환자 사울(피터 사스가드 분)이 등장하고, 실비아와 사울은 오해와 갈등을 거쳐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스틸컷

사스가드는 ‘블루 재스민’에서 케이트 블란쳇과 재혼할 뻔한 외교관 드와이트 또는 이병헌이 출연한 ‘매그니피센트7’에서 최종 보스 빌런 바솔로뮤 보그로 국내 팬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메모리’에선 돈은 많지만 이른 나이에 치매에 걸려 남동생의 감독 아래에서 살아가는 불안정한 남자 사울로 변신했다.

스틸컷

영화의 제목 ‘메모리’는 자칫 밋밋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기억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일까’를 반복해서 묻기에 다소 직관적인 제목이라 할만 하다.

기억에 매달리거나, 기억을 조작하거나, 기억을 거부하거나, 기억을 잃거나. 각각의 사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기억에 매달려 사는’ 실비아의 삶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기억을 조작한’ 그녀의 엄마, 실비아를 따뜻하게 품어준 건 ‘기억을 잃은’ 남자 사울이다.

‘천의 얼굴’ 차스테인이 이번엔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팬들은 물론, 미셸 프랑코 감독이 던지는 ‘기억’에 대한 다양한 단면을 숨죽이고 보고싶은 관객에게 영화는 다양한 ‘기억’을 불러오거나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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