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 외 출입금지’ 푯말 뒤 사람들, 그 사잇 시간에선… [요즘 전시]

국제갤러리, 박진아 개인전 ‘돌과 연기와 피아노’


박진아, 돌 포장을 벗기고 03, 2024. [국제갤러리]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돌과 연기와 피아노.’ 오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진행되는 박진아 개인전 전시명으로, 제목 자체가 작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돌은 작가가 지난해 부산시립미술관 그룹전을 준비하던 중 마주한 장면을 은유한다. 연기는 국제갤러리 레스토랑 주방에서 벌어진 찰나의 순간을, 피아노는 손끝으로 직접 피아노를 만드는 독일 슈타인그래버 공장의 내부에서 마주한 정경을 뜻한다. 작가는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단면에서 그가 마주한 기억의 파편들을 재구성해 회화로 풀어냈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각기 다른 공간에서 우연히 발견된 ‘사잇’ 시간마다 창작의 미학이 깊이 배어들었다. 전시장 벽에 나란히 걸린 크고 작은 캔버스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감춘 듯 흐릿하게 되살아난 인물들이 노동과 예술의 경계를 아릿하게 넘나들고 있어서다.

박진아, 분홍 방의 조명, 2023. [국제갤러리]


그림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Staff Only)라고 적힌 푯말 뒤, 다시 말해 백스테이지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일에 몰두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각할 틈도 없이 완전히 그 순간에 빠져 있다. 그런데 그 행위가 너무나 일시적이라 당사자도,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이도 쉽게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작가는 오롯이 자신의 일에 집중한 이들의 모습을 포착해 기억 속에서 불러냈다. 예컨대 목장갑을 무심히 뒷주머니에 찔러 넣은 남자는 지금 막 전시장에 도착한 듯한 빛바랜 회색 돌 포장지를 벗겨내는 데 온 집중을 쏟는 듯 보인다. 머리를 대충 묶은 채 갖가지 공구를 손에 쥔 여성은 피아노 음정을 세밀하게 조정하는라 눈썹 하나 꿈적하지 않는 것만 같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븐과 조리대 사이를 바삐 오가며 요리를 완성하는 요리사들의 모습은 마치 작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공연처럼 생기 넘친다.

박진아, 피아노 공장 06, 2024. [국제갤러리]


박진아, 키친 01, 2022. [국제갤러리]


마치 스냅 사진 찍듯 그림 한 컷으로 옮겨온 일상의 리듬이 캔버스 위에서 되살아나 어느새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생은 결국 순간에 지나지 않느냐고 말이다.

무엇보다 문 턱 높은 갤러리에서 노동의 강도나 의미보다 일시멈춤한 듯한 우리 누구나의 무대 뒤편 찰나를 간직하려는 작가의 평등한 시선이 두드러진다. 사진 여러 장을 조합해 다면적인 구도로 완성된 회화에서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관람객들이 만들어가는 서사가 드러나기도 한다. 시간의 층위와 기억의 단편이 화폭 속에서 새로운 맥락을 엮어내는 지점이다.

작품을 한꺼풀 더 벗겨보면, 찰나의 시간을 담담히 응시하고 그 틈에서 삶의 의미를 탐구하려는 작가의 또다른 의도도 엿보인다. 예술이란 시간의 일시성을 담아내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영원성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라서다.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일상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회화라는 도구로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붙들어 매고 지속성을 부여한 작가의 물음이 고요한 전시장을 묵직하게 채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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