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당신에게 [김민지의 칩만사!]

AI 별들의 잔치 ‘CES 2025’ 비하인드
삼성전자 미미했던 존재감
최태원-젠슨 황 만날 때, 전영현 부회장은 불참
‘두문 불출’ 행보 두고 여러 의견
“보다 적극적 영업 나서야…시간은 삼성편 아냐”


지난해 11월 18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NRD-K 설비반입식에서 전영현 부회장이 기념사를 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김민지의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삼성전자한테도 이런 상황은 전례가 없잖아요. 시간이 좀 필요하죠.”

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를 다녀왔습니다. ‘세계 최대 IT 가전 전시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세계 인공지능(AI) 리더들이 한 자리에 모였죠.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키노트를 시작으로 약 4일간 혁신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미국, 중국에 이어 한국은 3번째로 많은 기업이 참가하며 그 위상을 펼쳤습니다. 스타트업들이 모인 ‘유레카파크’에는 마치 서울 강남구 코엑스를 방불케 할 정도로 한국기업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의 존재감입니다.

지난해 CES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고객사를 대상으로 마련한 전시 부스를 최초로 기자들에게 공개하며 반등의 해를 만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DSA(미주총괄)로 있던 한진만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은 기자들 앞에 직접 나서 “올해(2024년)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능력을 2.5배 이상으로 늘리고, 내년(2025년)에도 이 정도 수준을 늘릴 계획으로, 기술 개발이 꾸준히 진행돼 앞으로 삼성의 경쟁력은 점점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당시 DSA)이 지난해 CES 2024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DS부문 전시부스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삼성전자 제공]


그러나 올해 DS부문 전시 부스는 국내외 기자들에게 공개되지 않았을 뿐더러, 철통같은 보안으로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분위기도 다소 침체된 느낌이었습니다. 일부 사업부장이 전시 부스를 찾긴 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외신 기자는 본지 기자에게 삼성전자의 새로운 반도체 부문장은 CES에 오지 않았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가 알기론 오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유를 물었으나, 저는 답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전영현 DS부문장은 지난해 5월 취임 후 약 8개월 동안 단 한번(호암상 시상식)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연말 창립 55주년 행사, NRD-K 설비반입식을 제외하면 회사 내에서도 전 부회장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그의 ‘두문불출’ 행보를 두고 많은 의견이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에게, 전 부회장에게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전 부회장이 취임 후 지난해 사업을 점검하고 강구책에 대해 고민 했으니, 올해까지 애정을 가지고 잘 지켜봐달라”는 겁니다. 삼성전자에게도 이번 위기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한 마디로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삼성전자의 편은 아닌거 같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번주 10나노급 6세대(1c) 미세공정을 적용한 ‘1c DDR5’ 양산인증(MS Qual, Mass product qualification)을 마무리했습니다. 1c D램은 업계 최선단 공정으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7세대 HBM인 HBM4E에 1c 공정 기술을 적용할 계획입니다.

SK하이닉스 1c DDR5 [SK하이닉스 제공]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D램 기술에서 SK하이닉스보다 약 1분기씩 뒤쳐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도 올 상반기 1c D램 양산 시작을 목표로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높아지는 미중 갈등도 삼성전자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 반도체 굴기를 늦추기 위해 메모리 뿐 아니라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강도 높은 수출 규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중 추가 수출 규제 대상에 한국 기업들의 HBM을 포함해, 중국 수출 길을 막은데 이어 파운드리에서도 고삐를 죄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14㎚(나노)나 16nm 이하 반도체에 대한 판매를 제한하고, 중국 및 기타 국가에 판매하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명시했습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경쟁력 약화의 돌파구로서 중국 팹리스를 대상으로 성숙 공정 수주를 늘리고 있습니다. TSMC가 5나노 이하 최선단 공정에서 고객사를 싹쓸이한 상황에서, 우선 성숙 공정 고객사를 확보해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한 매출을 확보한다는 방침입니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파운드리 시장까지 향후 더욱 확대되면, 삼성전자의 이러한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기술 격차를 좁히기도 바쁜데, 글로벌 국제 정세까지 삼성전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삼성전자에 오래 근무했던 한 고위 관계자는 “보다 적극적인 스킨십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번 CES에서도 많은 임원들이 북미 고객사를 밀착마크하고 설득해 하나의 고객사라도 따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어야 한다는 겁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일례로 최태원 SK회장은 이번 CES에서 젠슨 황과 8개월 만에 다시 만나 AI 동맹을 강조하며 발 벗고 뛰었습니다. SK그룹 부스에는 SK하이닉스의 HBM 등 차세대 메모리 제품들이 대거 전시됐습니다. 최 회장은 황 CEO를 만난 후 “이미 다 실무진끼리 정해서 올해 (HBM) 공급량 등은 다 결정됐고 (이번 만남에서) 그걸 확인하는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오는 31일 지난해 4분기 확정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시장 전반의 업황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많은 비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 부회장은 오는 3월 예정된 정기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통해 사내이사 및 대표이사로 선임됩니다. 지난해 급격한 주가 하락으로 주총에 많은 주주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가 삼성 반도체 부활을 위한 어떤 ‘해결책’ 또는 ‘비전’을 가져올지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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