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쏘아 올린 ‘집중투표제’, 최윤범 회장 운명 한화 손에 달렸다[투자360]

3%룰 걸린 정관 변경, 반대표 33% 피해야 도입 가능
1대주주 MBK-영풍 측 의결권 23%
‘10%대’ 한화 찬성은 역풍 부담, 반대·기권 시 도입 불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연합]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집중투표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최윤범 회장이 MBK파트너스와 영풍의 영향력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꺼내 들면서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인만큼 도입될 경우 ‘분쟁의 순기능’으로도 평가 받을 수 있다.

다만 집중투표제는 대주주의 주주권을 약화할 수 있어 재계에서는 기피하는 제도다. 고려아연 주주인 한화 역시 불편해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캐스팅보터로서 최 회장과 우호적 관계를 감안하면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해야 하지만 이 경우 한화 측 주주로부터 불어올 역풍이 부담 요소다.

오는 23일 고려아연은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있다. 작년 9월부터 시작된 1대주주인 MBK-영풍 연합과 2대주주 최 회장 간 분쟁은 이번 임시 주총에서 승패가 일부 결정될 예정이다. MBK 측은 신규 이사진 14명을 선임해 이사회 과반 의석 확보를 목표로 세웠다. 최 회장은 집중투표제를 도입해 MBK 측 대비 열세한 의결권을 보강하고 이사회 자리 지키기에 나섰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해서는 고려아연의 정관이 변경돼야 한다. 특별결의 사안인 정관 변경은 상법상 ▷출석 주주 의결권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즉 ‘33%’의 반대표만 나와도 집중투표제는 도입할 수 없어진다.

상장사가 정관에 배제된 집중투표제 도입할 때 ‘3%룰’이 적용된다. 개별 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최대 ‘3%’라는 뜻이다. 3%룰을 적용 받을 고려아연 주주로는 ▷영풍 ▷MBK ▷장형진 영풍 고문 ▷한화 ▷현대차 ▷국민연금 등이다.

1대주주인 MBK-영풍 측은 기존 약 47%인 의결권 지분은 3%룰 적용 이후 23%로 내려온다. 최 회장은 본인을 비롯해 특수관계인 모두 3% 이상 지분을 소유한 주주가 없다. 따라서 기존 20% 정도였던 의결권 지분은 오히려 33%로 강화된다.

의결권이 약화되는 MBK 측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저지하려면 ‘10%’의 추가 반대표가 간절한 상황이다. 현재 ‘10% 의결권’은 한화가 보유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화는 ▷미국 소재 계열사 ▷한화임팩트 ▷㈜한화 등을 세 곳을 통해 고려아연 의결권 지분 약 9%를 소유 중이다. 미국 법인이 3%룰을 적용 받지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며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최종 의결권은 10.7%로 높아진다.

만약 한화가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대하거나 기권할 경우 최 회장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MBK 측 의결권 지분 23%에 한화만 합산해도 특별결의 동의 조건에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화가 집중투표제에 찬성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의결권 지분이 높은 캐스팅보터로서 표결을 숨길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임시 주총에 참석해 집중투표제 도입 의안에 반대하거나 불행사한다면 해당 안건은 부결될 수밖에 없고 가결된다면 한화의 찬성이 전제돼 있다. 찬성표를 던져 집중투표제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한화 자체에도 도입하라는 주주 입김에 노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진다.

시장 관계자는 “한화는 사실상 고려아연 집중투표제에 기명 투표하는 상황”이라며 “한화 주주들을 의식하면서 집중투표제 찬반을 선택해야 하는 만큼 고려아연과의 우호적 관계를 고려해도 최종 의사결정은 고민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1998년 도입됐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정관에서 배제하고 있다. 삼일PwC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482곳 중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비율은 3%에 그친다. 야당에서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재계의 반발은 큰 상황이다.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외국계 자본 공격에 노출될 위험을 문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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