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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8일(현지시간) 워싱턴의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공화당 의원들과 회의를 마친 후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
미국우선주의·관세전쟁 일찌감치 예고
G2 리턴매치…대행체제 한계 불가피
[헤럴드경제=서정은·문혜현 기자] 우리나라가 8년만에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다시 마주하게 됐다. 1기때보다 더 강한 ‘미국 우선주의’가 예상된만큼 바쁘게 외교채널을 가동해야 할 상황에서 정상외교의 공백은 뼈아프기만 하다. 당장 방위비 압박, 대북 정책 변화 우려 등은 한미동맹의 끈끈함과 우리의 외교 역량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막강해진 MAGA, 美 협상우위 시도 이어진다=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오는 20일(현지시간) 취임한다. 이미 트럼프 2기에서는 중국 견제에 대한 속도가 빨라지고, 보호무역주의가 한층 강화되는 등 대대적인 정책 변화가 예고된 상태다. 1기 행정부보다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이 재현되는 것을 넘어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거래 본능’을 드러내는 대표 사례는 방위비 증액이다. 이미 선거 기간에도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 가이드라인인 2%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 후보자도 “부유하고 선진국인 나토 파트너들이 자국 국방 및 나토 파트너십에 더 기여를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은 이에 대해 “복잡한 문제”라고 했다. 우리나라 또한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방위비 분담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카드까지 제시할 수 있는 우려마저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4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재집권하면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할지 묻는 질의에 “한국이 우리를 제대로 대우하길 원한다”며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방어하는가. 우리는 아주 부유한 나라(한국)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시카고 경제클럽’ 주최 대담에서는 “내가 거기(백악관)에 있으면 한국은 방위비로 연간 100억달러를 지출할 것”이라며 우리나라를 ‘머니머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외교안보 문제를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보는만큼 이에 대한 협상 역량을 얼마나 잘 가져가느냐가 우리의 대미외교 역량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협상 전략으로 센 발언을 내보일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반응을 보고 우리의 대응 방향도 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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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로이터] |
▶중국 견제 속도-북미관계 압박…대행체제 한계 더 커질 듯 = 미국과 중국과의 긴장감도 한층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포함한 ‘관세전쟁’을 예고했다. 미국은 반도체 등 첨단 영역에서 중국 견제 조치를 발표하고 있고 중국도 이를 맞받아치는 중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가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란 얘기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방위비, 주한미군 문제 등은 향후 중국을 우리가 견제하는데 전향적인 입장이나 행동이 나올 때 거래대상으로 쓰일 수 있다”며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실리를 취하는 식의 접근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북미대화를 한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바이든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트럼프 외교안보 인사들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오히려 ‘북핵 협상’ 가능성까지 한 발 더 나아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이 수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 신행정부 취임 전 몇 인사의 인터뷰로 향후 한미간 대북정책을 가늠하는 것은 무리”라며 “우리의 북한 비핵화 목표는 그대로”라고 강조했다. 다만 과거 트럼프 1기때와 달리 북한의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 트럼프 후보의 북한과의 ‘담판 의지’ 등을 고려할 때 대북정책 방향이 기존 정부와 그대로 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명예교수는 “미국이 북한에게 핵을 내세우는 방식에서 이제는 관계 정상화를 내세우고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라며 “북한이 적대적 두국가론을 펴고 있어 과거에 말한 ‘촉진자’ 역할을 한국에 더이상 기대할 수 없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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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7일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일환으로 세워진 황해남도 재령군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이 진행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연합] |
이런 상황에서 대행체제 한계를 당분간 노출될 수 밖에 없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였던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두 차례 전화 통화만 이뤄졌다.
이상현 위원은 “최종 한미관계의 이슈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대통령”이라며 “미국도 우리나라가 민감한 상황이고, 정세가 불안한 점을 고려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우리나라, 미국 모두) 사실상 정권교체기라고 본다면 한미관계에서도 결국엔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며 “국내의 정치적 리더십공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실무적으로 현상유지가 최선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