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달라진 8년 ‘위험한 직접거래’? [트럼프 2.0 시대 개막]

사실상 ‘비핵화’ 아닌 ‘핵 억제’ 전환 가능성
전문가 “우선순위 뒤처져…한국 배제 못 해”


트럼프 1기 때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헤럴드경제=서정은·문혜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당선인이 취임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만날 의지를 내비치면서 한국의 이른바 ‘촉진자’ 역할이 대폭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북한의 핵 능력이 상당히 진전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미국이 사실상 이를 인정하고 북한과 직접 ‘비핵화’가 아닌 ‘핵 억제’를 두고 거래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대북기조 변화 가능성 커져…대화 문턱도 높다=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 주요 국방·외교 수장이 ‘스몰딜’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지명자가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국제법상 공식 지위를 인정하는 용어는 아니었지만,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대북기조도 바뀔 것이란 분석이 다수 제기됐다.

스몰딜이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진행된 미북 정상회담에서 제시된 협상 방안 중 하나로, 당시 북한의 영변 핵시설 해체를 고리로 미국은 경제적 상응 조치와 함께 연락사무소 설치나 평화선언 등을 맞바꾸는 내용이었다.

국가정보원도 최근 트럼프 당선인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김 위원장과 만나 핵 동결이나 군축 협상 등의 ‘스몰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또 한국을 배제한 ‘미-북 직거래’ 가능성에 “우리 정부로서는 대한민국을 배제한 일방적인 북핵 거래의 소지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이례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기 집권 당시 김 위원장과 세 차례 만나 핵 협상에 나섰지만, 모두 결렬됐다. 미국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달성을 목표로 북한과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빅딜’은 이뤄지지 않았고, 김 위원장 입장에서도 얻은 것이 없는 ‘노딜’로 대화는 끝났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 후보자는 15일(현지시간) 당시 협상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저도 매우 회의적이었던 사람 중 한 명”이라며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다가갔으나 김정은은 두 번이나 협상하기를 거부했고, 결국 지속 가능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빅딜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또 러시아·중국과 관계를 돈독히 쌓은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적극 응할 명분이 약해졌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파병의 대가로 북한에 첨단 우주기술과 위성기술을 공유할 의도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외교가에서는 북한의 러·중 친소 관계에 따라 대화의 가능성도 정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명예교수는 “과거에는 북한이 미국과 적대 관계 해소를 생존의 중심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사실상 ‘공포의 균형’을 잡아둔 상태라 장기전을 펼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다”며 “다만 한 가지 희망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미국이 대중국 전략 차원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포섭한다면 핵 문제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공화당 의원들과 회의를 마친 후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미북 대화 시기’ 언제…“하반기 물밑 접촉 가능성”=그럼에도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종식 이후 북한과 대화에 나설 것이란 전망은 지배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2년 뒤 예정된 중간선거 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북한과 적극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당시 김 위원장과 친분을 여러 차례 과시한 바 있다. 북한 관련 내용이 언급될 때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자신을 “그리워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 또한 트럼프 당선인과 관련한 비판 메시지를 따로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트럼프 당선인과의 대화가 필요할 때가 올 것이란 관측도 있다. 트럼프 1기 미국과 북한 간 핵 협상을 실무적으로 주도했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이 대통령의 의제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2017년과 같지 않다는 게 자명하다”면서도 “북한은 무시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북한이 어느 시점에 자신들을 의제에 강제로 밀어 넣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이와 관련해 “집권 2년 차 상반기에 미북 정상 간 만남이 있지 않을까 싶다”며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트럼프 당선인 입장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물밑으로 접촉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미북 대화에 한국의 운신의 폭이 적을지라도, 배제될 가능성은 적다고 입을 모았다. 고 교수는 “과거에 이야기된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한국에 더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한미 동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원칙론적으로 한국을 빼놓고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우리가 지금 강조할 것은 만일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한다면 항상 한미 간에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협의하는 체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좋을 것 같다. 그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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