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그만 와!” 사라진 홋카이도 자작나무들[함영훈의 멋·맛·쉼]

비에이 패치워크로드 벌채, ‘관광입국’ 찬물
日정부 “2030년 6천만 유치” ‘과잉’은 추진
현장 혼선 방치 “관광객 사유지 침범 탓” 만


홋카이도 비에이 자작나무 잘리기전


홋카이도 비에이 자작나무 잘린 직후


“누구를 향한 항의인가?” 잘라버린 자작나무를 서 있던 자리에 질서 있게 진열해 놓았다.[삿포로TV 뉴스캡쳐]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잘린 자작나무는 서 있던 그 자리에 ‘보란듯이’ 누운채 진열돼 있다.

‘설국’ 홋카이도의 겨울 매력을 대표하는 풍경, ‘사진 맛집’으로 통하던 비에이 마을(쵸) ‘패치워크 로드’의 자작나무 가로수들이 최근 모조리 베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삿포로TV의 지난주 보도영상에 따르면, 비에이마을 주민들은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많은 관광객이 지역민의 삶을 방해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것) 문제와 자작나무 가로수 그늘에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 점 등의 이유로 패치워크로드 자작나무 벌목을 결정했다.

현지인들은 지난 14일 아침 벌목용 장미와 포크레인을 동원해 모두 베어버린 뒤 ‘보란듯이’ 길가에 벌채한 나무를 질서 있게 쌓아두었다.

일본 정부가 ‘관광입국’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해 사상 최다인 3687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2030년에는 6000만명 유치를 목표로 매진하는 상황에서, 비에이마을의 이같은 조치는 여행자는 물론, 일본 정부도 당혹스럽게 한다.

표면적 원인으로는 좁은 길, 관광객의 주민 밭 침범 등이지만 보다 깊이 따져보면, 아름다운 곳에 사람이 모이면 관광국이나 지자체가 일정한 포토존 구역을 매입 지정해 거기서만 사진 찍도록 하던가, 주민들에게 수익사업을 독려하면서 관광객 유입에 따른 반대급부를 제공하려는 노력했어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는 점도 무시할수 없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비에이 패치워크 경관지 일대 꽃밭. 원래는 서로 다른 작물을 심는 밭들의 조화로운 모자이크가 예쁘기로 소문났는데, 사람들이 늘자 아예 형형색색의 꽃밭까지 조성했고, 밭둑길이 아닌 통행로도 만들었다. 사람들 오라는 뜻 아니었나?


슬쩍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 탓을 하는데, 그 경관은 주민이 만들었고, 아름답기에 수십년 그냥 두었으며, 일본인들이 오랜 세월 먼저 가서 즐기고, 외국인 관광객에게 추천하거나 입소문을 낸 곳이다.

일단 벌채를 감행한 주민들의 주장 속에는 “관광객 탓”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이곳에 오지 말라”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삿포로 TV ‘STV 뉴스’ 보도에 따르면, 주민들이 벌채를 결정한 데에는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사진을 찍기 위해 관광객들이 차도를 막고 무단으로 사유지 밭에 들어가는 등 주민들의 생활이 피해를 입는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급증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인터뷰에서 “트랙터 등 대형기계로 통행하는 경우도 많은데, 순간 조작을 잘못하면 위험할수 있어 두려움을 느끼며 통행한다”고 말했다.

나무가 다 잘린 뒤 현지에 가본 여행자는 “가이드 설명으론, 마을의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놔뒀겠지만,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삿포로 온 김에 비에이후라노 투어버스로 들렀다가 내려서 진짜 딱 사진만 찍고 가는거라, 저 동네에서 돈 쓰는 사람이 아예 없어서 도움이 안되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라고 SNS에 올렸다.

베어지기전 모습


비에이 자작나무 가로수를 벌채한 후 그 자리에 눕혀 놓았다.


일본 관광당국에 따르면, 패치워크로드는 형형색색의 논밭이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헝겊조각을 이어붙인 패치워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철에는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논밭 위, 줄지어 서 있는 자작나무의 설경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의 인기명소로 손꼽혀왔으나 아제는 볼수 없게 됐다.

이 일대에는 자작나무 가로수길 말고도 유사한 포토포인트가 많은데, 현재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다른 곳도 나무를 베거나 관광객 출입을 통제하는 방안을 협의중이라는 얘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일본에 가장 많이 가는 외국인 ‘빅3’인 한국인(작년 882만), 중국인(698만), 대만인(604만)은 “나 때문인가?”라며 마음이 편치않다.

그러나, 그곳에 가장 많이 가는 사람은 당연히 일본인이고,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것은 일본 중앙정부, 지방정부의 책임도 크다. ‘2030년 6000만 외국인 유치를 통한 관광입국’ 플랜에 비에이 마을 주민들이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비에이 자작나무 가로수 벌채는 누구를 향한 항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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