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수의 입고 구치소 규정 따라야
20일 뒤 ‘피고인’ 신분…헌정사 처음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후 서부지법 내부의 한 사무실과 집기류 등이 파손돼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47일 만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윤 대통령은 20일 뒤 피고인 신분으로 형사 법정에 서게 됐다. 현직 대통령이 구속된 것과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것 모두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새벽 3시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형사소송법상 구속 영장이 발부되려면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疏明)’이 있어야 한다. 소명이란 법관에게 혐의가 확실하다는 추측을 하도록 만드는 행위를 뜻한다. 영장이 발부된 이상 법원도 일차적으로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에 대해 현저한 혐의가 있음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법원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윤 대통령 측이 방패로 활용한 형사소송법 제110조와 관련 있다. 이 조항은 군사상 비밀을 요구하는 장소에 대해선 압수수색을 제한한다는 조항이다. 그간 윤 대통령은 이 조항을 근거로 압수수색을 거부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같은 논리로 관저 안에 남아 있는 증거물을 윤 대통령 측이 인멸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구속영장 발부로 윤 대통령은 구인 피의자 대기실이 아닌 일반 수감자가 수용되는 일반 거실로 이동했다. 복장도 양복 차림의 사복이 아닌 수의를 입게 됐고, 다른 재소자들처럼 구치소 규정을 따라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 받고, 마약 등 반입금지 물품 휴대 여부를 확인하는 정밀신체검사도 받았다. 수용자 번호를 달고 얼굴 사진을 찍는 ‘머그샷’ 촬영과 지문 채취 절차도 진행됐다. 독거실엔 TV와 침구류, 전기열선이 들어간 난방패널이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윤 대통령은 빨래를 스스로 해야 한다. 화장실에 비누와 빨래판 등이 있다. TV로 지상파 방송의 뉴스는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영치금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옷·운동화 등 생활용품과 과일·과자·소시지 등 음식을 살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윤 대통령은 최대 20일간 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을 수 있다. 공수처는 20일을 검찰과 절반인 10일씩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이는 공수처가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에 대해 기소권이 없기 때문이다. 공수처법에 따라 공수처는 조사 후 검찰에 공소제기 요구를 해야 한다. 결정서 등 관련 서류와 증거물을 서울중앙지검 검사에게 송부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서울중앙지법에 윤 대통령에 대한 공소를 제기할 방침이다. 20일이 지나면 윤 대통령은 헌정사 최초로 피고인 신분으로 형사 법정에 서게 된다.
윤 대통령은 체포된 이후에도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 불응했으나 피고인이 되면 법정에 안 나갈 수 없다. 정식 공판 기일엔 피고인의 법정 출석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면 법원은 구인장을 발부한다. 구인장은 특정인을 특정 장소로 강제로 끌고갈 때 발부하는 영장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구속적부심을 청구할 가능성은 있다. 이는 구속의 적법성을 다시 판단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는 절차다. 하지만 명백한 사정변경이 없는 이상 구속적부심으로 석방 허가를 받는 건 매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체포에 대해서도 체포적부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구속 기소가 이뤄지면 윤 대통령의 구속 기간은 늘어난다. 보석이 허가되지 않는 이상 1심에서 6개월, 2심과 3심에서 6개월씩 최대 1년 6개월까지 구속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구속 이후에도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 19일 오후 윤 대통령을 조사하려 했지만 윤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았다. 공수처는 20일 오전 10시에 출석하라고 재차 통보한 상태 지만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에 수사권이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변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 접견할 수 없도록 조치하는 등 공범들과 진술을 맞출 수 없도록 대응하고 있다.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 변호인단은 지난 19일 “법치가 죽었다”며 “당장 대통령을 석방해야 할 사유가 차고 넘쳤음에도 터무니 없는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반발했다. 이어 “구속영장 발부로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폭력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며 “참담한 현실 앞에 목 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 본인도 같은날 변호인단을 통한 옥중서신에서 “비상계엄의 정당한 목적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법 절차에서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사법기관과 10번 충돌해 10번 모두 패배했다.
탄핵 심판이 시작된 후 윤 대통령은 관련 서류 수취를 거부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20일 서류가 송달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같은 달 30일엔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한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당시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는 수사권한이 없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윤 대통령 측은 체포·수색영장 집행에 대해 이의신청까지 냈지만 서울서부지법에서 기각됐다. 당시 법원은 “신청인(윤 대통령)이 사법 경찰관의 구금·압수에 대한 처분의 불복’ 형식으로 체포영장과 수색영장 발부에 대해 다투는 것은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적법한 불복 절차가 아니라는 취지다.
이후 공수처의 첫 번째 체포영장 집행이 실패로 돌아가자 공수처는 체포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이때도 윤 대통령 측은 반발했지만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7일 체포영장을 다시 발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엔 정계선 헌법재판관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다. 하지만 헌재는 정 재판관을 제외한 재판관 7인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이를 기각했다. 또한 탄핵심판 변론기일 이의 신청도 기각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이곳은 헌법재판소지 형사 법정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헌재는 변론기일 변경신청도 받지 않았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브리핑에서 “재판부에선 기일 변경을 할 만 한 사유가 아니라고 본 것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12·3 비상계엄에 관한 수사 기록을 증거로 채택하지 말아 달라며 낸 이의 신청도 기각했다.
윤 대통령은 체포에 대해서도 서울중앙지법에 “부당한 체포”라며 체포적부심을 청구했지만 역시 기각됐다. 그간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불복 절차를 밟았지만 받아들여진 건 한 차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