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벽면·쓰러진 입간판 그날 보듯
경찰버스 10대 성벽처럼 배치·경계
주민 생활불편·극심한 공포감 호소
19일 윤석열 대통령 지지들의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 폭동으로 서부지법이 폐허와 다름 없이 변했다. 20일 오전 서부지법 건물 외벽이 파손되어 있다. 임세준 기자 |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영장 발부에 폭도로 변한 지지자들이 덮친 서울 서부지법 현장. 하루가 지난 20일 오전 8시께 찾은 이곳은 여전히 전날의 공포스러웠던 분위기를 현장 곳곳에 담고 있었다.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했다. 폐허와 다름 없었다.
서부지법의 상징인 약 5m 길이의 ‘서울서부지방법원’ 입간판은 찌그러진 채 쓰러져 있었다. 또 정문 한편에는 지난 난동의 여파로 망가진 질서유지선이 산산조각이 난 채 쌓여있었다. 서부지법을 둘러싼 담 밑에는 집회 지지자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가득했다. ‘도둑질을 중단하라(STOP THE STEAL)’고 적힌 보수 집회의 손팻말은 갈기갈기 찢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또 태극기, 생수병, 과자봉지 등도 널브러져 있었다.
또 다른 폭력 사태에 대비해 경계는 삼엄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법원 앞으로는 경찰의 질서유지선이 설치돼있고 그 뒤로는 경찰 20여명이 도보를 통제하며 삼엄하게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법원 직원 외에는 도보 출입도 통제되고 있었다. 또 법원 앞 도로에는 경찰버스 10여대가 성벽처럼 주차돼 차량 통행을 통제했다.
이처럼 곳곳에 파손된 흔적을 지닌 상태에서도 법원은 일단은 20일 정상 운영하기로 했다 서부지법은 정상적으로 재판을 진행한다. 다만 차량 통행 등은 불가능하고, 법원 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입자 신분 확인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기존 소지품 검사 및 금속 탐지 등의 출입 절차보다 강화됐다.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은 시민들에게도 커다란 공포와 상처를 남겼다. 서부지법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생활 불편부터 극심한 공포감까지 호소했다. 서부지법 앞을 지나던 직장인 임모(33) 씨는 “법원도 부수는데 사람은 못 해치겠냐”며 “이 앞을 지나다가 심기 거스르면 해코지 당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서부지법 옆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안모(31) 씨는 “지난 19일 새벽내내 시끄러워서 한숨도 못 잤다”며 “영장이 발부되고 난 후에는 집회 참가자들이 마이크를 들고 ‘폭주’하듯 고성을 질러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근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김모(34) 씨는 “생활에서 제약이 많이 커졌다”며 “집회 당일에는 집까지 오는 길이 막혀 멀리 돌아서 와야했다”고 했다.
이어 김 씨는 “지지자들이 추위를 피해서 오피스텔 로비에 와있었다”며 “집회 지지자들로 오피스텔 주변 교통이 꽉 막힐 정도여서 배달 음식을 시킬 엄두도 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자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도 초긴장 상태다. 지난 19일 헌재 앞에서도 월담, 공무집행방해, 흉기 은닉 휴대 등의 혐의로 3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되며 헌재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20일 오전 8시께 헌법재판소 정문 반대편 인도에 ‘부정선거 부패방지대’, ‘신자유연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보수 성향 단체 지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에 헌재 앞 도보에는 경찰 10여명이 교통, 집회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자 경찰은 법원 점거 사태에 대해 엄정 대응하기로 밝힌 상태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폭력 불법에 대해서 이런 사태를 일으킨 사람에 대해 구속 수사 등 엄정하게 대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서울경찰청은 수사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경찰은 형사기동대 1개 팀을 지정해 양일간 채증한 자료를 분석하고 추가 가담자를 밝혀낼 예정이다.
앞서 지난 19일 오전 3시께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되자 밤새 서부지법 앞에 모여있던 지지자들은 서부지법에 난입하는 등 폭동 사태가 빚어졌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법원에 난입한 지지자들은 법원의 정문과 유리창, 외벽 등을 파손했다. 또 지지자들은 경찰로부터 빼앗은 방패 등으로 경찰을 폭행하기도 했다. 폭동 사태에 가담한 지지자 46명은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로 체포돼 연행됐다. 이영기·안효정·김도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