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토요타도 엔비디아와 협력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수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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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왼쪽) 현대자동차그룹 GSO 본부장(부사장)과 리시 달 엔비디아 오토모티브 담당 부사장이 9일(현지시간)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과 토요타 등 글로벌 최상위권 완성차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 세계 1위인 엔비디아와 협업 범위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자율주행과 PBV(목적 기반 차량) 등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인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분야에서 AI 반도체가 중추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생성형 AI를 넘어 ‘피지컬(물리적) AI’ 시대를 선언한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완성차에 자사의 반도체를 탑재할 경우 다양한 정보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어, 서로 윈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지컬 AI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자율주행차 같은 실물 하드웨어에 탑재되는 AI를 말한다.
20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네바다주 퐁텐블로 라스베이거스 호텔에서 엔비디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각사의 AI 반도체 기술과 플랫폼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미래 먹거리로 개발하고 있는 SDV와 로보틱스 등 핵심 모빌리티 분야에서 엔비디아의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다. 아울러 스마트 공장 등 사업 운영 전반에도 AI 기술을 활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업계 1위인 토요타도 엔비디아의 첨단 AI 반도체를 차세대 차량에 적용한다. 토요타가 주목하는 반도체는 하나의 반도체 칩에 여러 기능을 집적한 ‘SoC(System-on-Chip)’ 제품이다. 이전에는 다양한 부문에서 따로 작동하던 차량용 반도체를 한 곳으로 통합할 수 있다. 다양한 외부정보를 받아 종합할 수 있어 향후 자율주행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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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벤츠,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BYD, 니오 등 25개 이상의 자동차 제조업체와 자율주행 업체가 엔비디아의 솔루션을 사용하고, 협력 범위도 더욱 확장해가는 모습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앞다퉈 AI 반도체 기업과 관계의 물꼬를 트는 이유는 SDV 구현을 위해 AI 반도체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젠슨황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피지컬 AI 사업 진출을 선언한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자동차는 다양한 변수 속에서 AI 반도체의 가능성을 활용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슈퍼널 등을 통해 로봇과 UAM(도심항공교통)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처럼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차량 생산을 넘어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성을 높여가는 것도 엔비디아에게는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실제 엔비디아는 올해 개최된 CES 2025에서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가상 현실 플랫폼 ‘코스모스’를 공개한 바 있다.
김형준 서울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명예교수)는 “완성차 업계 입장에서는 차량에 들어가는 수천개의 칩을 엔비디아의 솔루션으로 최대한 줄이고, 또 고성능 AI로 기능을 고도화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로봇과 자율주행 등 AI의 중요성이 큰 사업분야에서 다양한 AI 기술을 활용해 볼 수 있어, 서로 간의 매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과거 연비나 효율성, 승차감을 넘어 최근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을 늘려가고 있다. 테슬라를 비롯한 신흥 완성차 업체들이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자율주행과 최신업데이트 기능 적용 등 빠른 혁신을 가져온 데 따른 변화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지난해 10월 무인택시 ‘사이버 캡’의 프로토타입을 발표하고, 2027년부터 실제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내놨다. 중국의 IT기업인 화웨이와 샤오미도 자동차 기술 시장에 뛰어들면서 ‘자동차’에 IoT(사물인터네)와 공간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신흥 업체들의 선언에 완성차도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마카베 아키오 일본 타마대 특별초빙교수는 14일 프레지던트지 기고를 통해 “기존 완성차 메이커들이 신흥 메이커들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최근 변화상을 잘 파악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자동차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시장이 큰 폭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자율주행 시장이 본격화하고, 새로운 업체들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자동차와 반도체 기업 간 협업 관계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AI 반도체 분야는 현재 엔비디아가 압도적 선두지만, 대항마로 나서고 있는 브로드컴이나 국내 업체인 텔레칩스 등 새로운 업체들의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동시에 SDV 시장에서 뒤쳐졌던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시장 참여도 활발해질 공산이 크다.
김 명예교수는 “AI 반도체 탑재로 차량용 소프트웨어가 효율화되면 완성차업계가 고민하는 차량 경량화 등 분야에 더욱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면서 “시장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이 늘어날수록 업계의 발전도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시장 변화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전망이다. AI 반도체는 우리 기업들이 생산하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솔루션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AI 반도체에 장착되는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대부분 ‘주문형 반도체’로, 각 플랫폼 기업들이 추구하는 AI 서비스 모델이 다르다는 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례로 같은 브랜드의 자율주행 자동차더라도 정보를 수집하는 라이다나 레이더 등 장비의 차이에 따라 방향성이 크게 달라진다. 다양한 산업군에서 활용되는 AI 로봇 역시 쓰임이 다른 만큼 주문형 반도체 시장에 특화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우리 업계에도 긍정적 요소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피지컬 AI 등을 통해) 반도체의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은 우리 반도체 업계 입장에서는 긍정적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시장이 점차 치열해지고 자율주행 등 기술이 더욱 진화하면서, 고성능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져 한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필요도도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