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준의 크로스오버] LA산불 피해 복구, 트럼프의 몽니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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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지나간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의 모빌홈 구역에서 구조대원들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AP=연합]

지난 1월 7일 발화한 로스앤젤레스 산불의 진화율이 마침내 50%를 넘겼다.

캘리포니아 산림소방국(Cal Fire)에 따르면 1월 19일 오후 기준 가장 넓은 면적을 태운 팰리세이즈 산불의 진화율이 56%,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이튼산불은 81% 가량 불길이 잡혔다.

시 당국은 산불 피해지역에 내린 통행금지를 해제하고 거주민들에 한해 불에 탄 동네를 출입할 수 있도록 봉쇄를 풀고 있다.

시속 60마일(약 97km)에 달하는 산타애나 강풍이 LA일대를 또 엄습한다는 경보가 내려져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그래도 LA 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꼽히는 이번 산불참사는 일단 한 고비 넘긴 듯하다.

무엇보다 피해복구가 최우선적인 과제로 떠오른다. 길게는 수십년간 몇세대에 걸쳐 살아온 동네와 집이 잿더미가 됐으니 산불 이전의 상태로 원상복구할 일은 난망하다.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집을 새로 짓고 공동체를 다시 조성하는 데 5년이 걸릴 지, 10년이 걸릴 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어떤 이재민의 말 마따나 집은 다시 지을 수 있을 지 몰라도 예전같은 일상생활은 결코 회복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상실의 아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한 산불 이전과 이후는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재건이라는 의미의 리빌딩(Rebuilding)이 구호처럼 내걸리고 있지만 아직도 검푸른 연기가 풀썩거리는 집터에 주저 앉은 이재민들에겐 그저 공허한 소리로 들리지 않겠는가. 아직은 절망의 늪이 너무 깊어 나무 토막 하나도 집어들 기운이 없는 이재민을 달래보려는지 당국은 갖가지 현실적인 구제방안을 내놓고 있다.

엊그제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화재 피해지역의 주택 소유자들에게 주택담보대출금(모기지) 상환을 3개월 연기하는 데 은행들이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4월 15일까지 해야하는 소득세 신고도 10월 15일까지 늦춰준다고 하더니 아예 내년 4월에 해도 된다고 생색냈다.

보험회사들이 산불 등 자연재해가 잦은 캘리포니아의 주택보험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LA지역의 주택 10채 중 1채 꼴로 보험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 산불 피해지역의 보험처리 여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나마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운영하는 일종의 공영손실보험인 ‘페어플랜’이 어느 정도 주택 자체는 커버해주고, 보험가입을 거부했던 대형보험사들이 이재민 대상으로 보험청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어 사회적 쟁점으로 번지지는 않고 있다.

참고로 LA산불로 인해 보험으로 보상해줄 손실규모는 약 2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민간날씨정보업체 애큐웨더가 추정한 총 손실규모 2500억달러의 10%도 안되는 정도만 보험으로 처리되는 셈이다.

재건과 복구는 건설과 건축이 핵심이다.당연한 얘기를 꺼내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제2기의 출범으로 연방정부의 재건비용 지원과 건설인력 공급, 자재수급 등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는 정치성향면에서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진보세가 강한 곳이다. 트럼프는 LA산불이 발생하자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 민주당 정치인들이 물관리 등 재난대비에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이같은 트럼프의 심기를 반영하듯 연방하원의 마크 존슨 공화당 원내대표는 LA산불 피해를 지원하는 연방정부의 예산을 승인하는 데 정치적인 조건이 필요하다고 토를 달았다.

국민이 천재지변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을 정파싸움에 이용한다는 비난이 당장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대량 추방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이민자로부터 국경을 ‘봉쇄’하겠다고 공언했다. 작업현장에서 이른바 서류미비자로 불리는 불법체류 노동자를 색출하는 일이 트럼프 취임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다. LA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새해들어 캘리포니아 중부 농장지대인 베이커스필드에서 세관및 국경 순찰대의 단속으로 수십 명이 수일간 구금돼 그 이후 농장 근로자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농장주들은 일터에 출근하는 근로자의 수가 감소했다고 증언했다.

가뜩이나 인력난을 겪고 있는 미국의 건설업계는 단속과 추방을 피하려는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일하기를 꺼리게 되면서 산불지역 재건이 지체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미 주택 건설업 협회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건설 노동자의 41% 이상이 이민자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30% 가량이 불법체류 노동자라는 통계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도 건설업계의 자재수급에 걸림돌이다. 전체 주택 건설 비용의 약 15%를 차지하는 주택 건축 자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목재는 주로 캐나다와 태평양 북서부에서 공급된다. LA 지역 화재로 1만 6천채 이상의 주택과 건물이 소실되거나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피해 건축물 중 상당수가 단독주택으로, 재건축이 필요한 주택은 최소 1만여채로 추산되고 있다.이는 최근 몇년간 LA에서 매년 새로 짓는 주택의 약 2배에 달하는 수량이다.

미국의 신규 주택 건설에 사용되는 목재의 30%가 캐나다산이다. 반덤핑이 적용되면 올해 말 관세가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트럼프가 공언한 25%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면 캐나다산 목재에 대한 수입 관세는 전체적으로 50%를 넘을 수도 있다.

LA산불이 꺼져가는 상황에서 피해복구를 위한 절차와 노력이 트럼프 행정부와 캘리포니아주의 불편한 관계 탓에 자칫 이재민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나 않을 지 또 걱정스럽다.

2025012101000028200001021황덕준/미주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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