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사에 산업별 희비…자동차·배터리 ‘한숨’, 조선 ‘두근’

취임사서 “관세 부과” 언급…행정명령은 안해

여전히 강력한 미국 중심 보호무역 기조 재확인

‘에너지 패권’ 강조, 전기차·배터리 기업 타격

미 에너지 직접 개발 장려…한국 조선업계 기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 퍼레이드 행사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들어보이고 있다. [AP]

[헤럴드경제=김현일·양대근·한영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 날 서명한 행정명령에서 우려했던 신규 무역관세 내용은 빠졌지만 여전히 미국 중심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재천명했다.

특히 취임사에서 “외국에 관세와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언급해 대미 수출 전선에 서 있는 우리 기업들의 불안감이 현실화된 모습이다. 관세 부담을 높여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생산시설을 짓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다.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우선 추진할 6대 의제 중 하나로 ‘에너지 패권’을 제시해 전기차와 청정에너지 사업을 하는 국내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의사당 로툰다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 시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대신 우리는 우리 시민들이 부유하도록 외국에 관세와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관세, 세금, 수입을 징수할 대외 수입청(external revenue service)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혀 향후 관세를 활용해 미국의 무역 적자를 축소하고 세수를 늘리는 데 주력할 것임을 예고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승리 이후인 지난해 11월 중국산 제품에는 10%의 추가 관세, 인접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행정명령에서 관세 조치는 빠져 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이에 대해 “보편관세 및 중국 등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라는 선거 공약을 어떻게 이행할지를 두고 행정부 내에서 여전히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대신 미국의 무역적자 및 교역상대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조사하는 지시를 내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대미 수출 전선에 서 있는 우리 기업들의 향후 사업 전략도 뒤바뀔 전망이다. 미국 가전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율과 부과 품목 등 다양한 상황에 맞춰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있다. 글로벌 주요 생산거점별로 할당된 생산 물량을 조정하거나 생산지를 이전하는 방법 등으로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며 관세 폭탄을 피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선적 부두[현대자동차·기아 제공]

로이터는 이날 대만 노트북 제조사 콤팔(Compal)과 인벤텍(Inventec)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대응해 미국 텍사스로에 투자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전기차와 배터리의 경우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화석연료 산업을 지키고 미국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들을 지켜낼 것”이라며 “행정명령으로 (바이든 정부의) 그린뉴딜을 종식시키고 전기차 의무구입 규정을 철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공언해왔던 전기차 보조금 폐지가 현실화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현지 공장 구축 등 전기차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려온 현대자동차·기아와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국내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하이브리드차량 등 북미에서 인기가 높은 차종의 판매 비중을 늘리면서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내년 말 미국에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양산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는 등 친환경 차종의 다양화로 적극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원가절감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신시장 개척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김성진 한국환경연구원 탄소중립연구실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내연기관차 배출량 규제와 전기차 판매율 의무화 규제가 폐지된다면 미국 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는 크게 둔화하고, 한국 전기차 제조업체의 수출 및 시장점유율 감소가 예상된다”면서 “향후 정부, 연구기관, 기업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세부 정책별로 수립해 논의를 정기화하는 등 적시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조선업계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 에너지 생산 장려를 공식화하면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싣고 나를 수 있는 LNG선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 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LNG 수출을 규제했다. 이 규제로 미국의 LNG 신규 수출 라이선스는 2022년 38건에서 지난해 7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식에서 “전략 비축유를 다시 가득 채우며, 에너지를 전 세계로 수출하겠다”며 석유 및 천연가스 시추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만큼 LNG 수출 규제는 폐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LNG선은 고부가가치 선박이자 우리나라 조선사들의 대표 주력 선종이다.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선박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고 있지만, LNG선만큼은 우리나라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글로벌 LNG선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 영향으로 LNG선 발주가 늘어날 시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수주전에서 우위를 선점할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LNG선 수주가 확대될 시 우리나라 조선사들의 실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LNG선은 건조 시 고난도 기술이 요구되는 만큼 다른 선박과 비교했을 때 가격이 비싸다. 17만4000㎥ 규모의 대형 LNG선 가격은 대형 유조선(32만㎥ 기준)보다 2배 이상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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