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전면수정 불가피…韓 핵무장론도
北핵억제 거래 전망…전문가 “韓배제 못해”
“내년 북미정상 만남땐 하반기 물밑 접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부르며 첫 임기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잘 지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난 김정은과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다”고 자신과 김 위원장의 관계를 소개했다. 사진은 트럼프 1기 때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AFP]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부르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에 비해 북한의 핵 능력이 상당히 진전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미국이 사실상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북미 간 비핵화가 아닌 핵 억제 등 ‘스몰 딜’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관측이 뒤따른다. 북미 직접대화가 급물살을 탈 경우 한국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북기조 변화 가능성 커져…대화 문턱도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난 김정은과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다”면서 “이제 그는 핵 보유국이다. 그가 내가 돌아온 것을 반기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퇴임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주요 안보 위협으로 어떤 것을 지목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미 트럼프 2기 행정부 국방·외교 분야 주요 인사들은 북미 간 ‘스몰딜’ 가능성을 내비친 상태다. 특히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가 앞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지칭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스몰딜이란 통상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미 본토 타격 능력 제한에 초점을 맞추면서 핵 동결과 군축, 그리고 제재 완화를 비롯한 대북 경제적 상응 조치 등을 주고받는 방안을 말한다.
국가정보원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만나 핵 동결이나 군축 협상 등 스몰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국정원은 한국을 배제한 북미 직거래 가능성에 대해 “정부로서는 대한민국을 배제한 일방적인 북핵 거래의 소지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북미협상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매우 회의적이었던 사람 중 한 명”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다가갔으나 김정은은 두 번이나 협상하기를 거부했고, 결국 지속 가능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빅딜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김 위원장과 세 차례 만나 핵 협상에 나섰지만 모두 결렬됐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목표로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러한 ‘빅딜’은 이뤄지지 않았고, 김 위원장 입장에서도 얻은 것이 없는 ‘노딜’로 막을 내렸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 같은 교훈을 바탕으로 스몰딜을 추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가운데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미정상회담을 비롯한 ‘톱다운’ 방식을 통해 핵 보유국 북한을 인정하면서 핵 동결이나 군축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적극적인 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패싱당하는 ‘통미봉남’은 물론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만은 없게 되는 셈이다.
이 경우 한국은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대북정책을 비롯한 외교안보정책의 근본적인 수정이라는 절체절명의 짐까지 짊어져야 한다.
아울러 북미협상이 스몰딜에 그친다면 그렇지 않아도 날로 힘을 얻어 가고 있는 한국 내 자체 핵무장론을 더욱 부채질할 수밖에 없다.
한국 내 자체 핵무장은 미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강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라는 점에서 한반도정세가 시계제로 상태로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미 대화 시기’ 언제…“하반기 물밑 접촉 가능성”=미국으로서는 본격적인 북미대화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종식 이후 검토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2년 뒤 예정된 중간선거 전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차원에서 김 위원장과의 대화가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자신을 “그리워한다”고 주장하는 등 여러 차례 친분을 과시한 바 있다. 김 위원장 또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직접적인 비난 메시지는 따로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를 마냥 거부할 이유는 없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북미 핵 협상을 실무적으로 주도했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제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2017년과 같지 않다는 게 자명하다”면서도 “북한은 무시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자신들을 의제에 강제로 밀어 넣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집권 2년 차 상반기 즈음 북미 정상 간 만남이 있지 않을까 싶다”며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물밑으로 접촉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미 대화 흐름 속에서 한국의 운신의 폭이 적을지라도 배제될 가능성은 적다고 입을 모은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과거 이야기된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한국에 더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한미동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원칙론적으로 한국을 빼놓고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만일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한다면 항상 한미 간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협의하는 체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지금부터 강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혜현·서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