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좋아하는 트럼프…‘한국 패싱 북한과 대화’ 대비하라”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 부차관보 인터뷰

트럼프, 북한과 대화 ‘외교적 성과’로 생각
ICBM ‘폐기’ 중·단거리 제한않는 거래 가능
보편 관세 부과에 동맹국간 긴밀 협력 필요
아베식 ‘밀착외교’ 참고 관계 구축땐 도움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가 지난 15일 헤럴드경제와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목희 기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의 조율 없이 어떠한 형태로든 북한과 협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 국무부에서 한국을 담당했던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이자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 정책연구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5일 헤럴드경제와 화상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특히 한국을 제외한 북미 협상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는 대신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제한하지 않는 것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한국의 대응에 관해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일깨워야 한다”며 과거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2017년 1월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10차례 이상 대면 정상회담을 한 것처럼 밀착 외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트럼프가 이데올로기나 정책을 중시하기보단 사람 대 사람의 개인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향후 외교 방향에서도 이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트럼프 2기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해 파장이 크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핵무기를 실험했으며, 미사일에 핵무기를 장착하는 등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을 공식적인 ‘핵 보유국’으로 ‘인정(acknowledge)’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바이든 정부와는 다를 것이다. 나는 트럼프가 북한과 다시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믿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이 ‘외교적 성과(diplomatic performance)’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노딜’로 끝난 지난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조차도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더 이상 비핵화 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이제 북한은 공식적인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며, 제재 완화를 위한 대화를 원한다. 비핵화를 위한 대화는 이제 끝났다.

-트럼프가 한국을 패싱하고 북한과 협상할 가능성이 있나?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 북한이 직접 맺을 수 있는 몇 가지 협상이 있다. 트럼프가 북한의 ICBM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IRBM이나 SRBM을 제한하지 않는 것도 협상 조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협상은 한국과 일본에 매우 위협적일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복잡해질 것이다. 비핵화 협상이 통하지 않는 북한을 상대할 다른 방법들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매우 명백하다. 우리는 비핵화를 목표로 하되 북한의 위협이 커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방위비 인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어떤 식으로든 주한미군의 방위비 인상을 통해 한국을 압박하려 할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 정부와 함께 합의한 내용을 성실하게 이행했다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 캠프 험프리스(평택 미군 기지) 등 주한미군이 한미 공동 방위 태세에 이바지하기 위해 하는 일임을 상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 관계가 왜 미국의 이익에 중요한지를 미국에 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판단하나.

▶정반대로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로 인해 큰 돌파구가 마련됐다고 생각하고, 법원과 검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이 매우 어려운 시기를 끝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상황은 느리지만 확실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12·3 계엄으로 한미관계 퍼펙트 스톰(복합위기)을 우려했었다. 지금은 어떤가.

▶퍼펙트 스톰의 가능성이 오히려 더 커졌다. 트럼프는 미국의 한미 동맹 등 동맹 관계의 원칙과 이를 지키기 위한 헌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임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와 동시에 윤 대통령의 계엄사태로 진보 성향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향후 대선을 통해 대통령직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윤 대통령과 달리 북한과 중국에 친화적인 입장을 갖고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과는 대치되는 성향이다. 퍼펙트 스톰이 더 커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럼프 정부는 취임 전부터 보편 관세 등을 무기로 동맹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관세 문제에 대해선 그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관세 부과를 무기로 사용해 무역 파트너를 압박할 의도가 있다고 본다. 이것이 문제다. 역사적으로 무역 파트너에게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 보복성 조치가 뒤따랐고, 상대 국가와의 관계가 악화하게(downward spiral) 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면 부담을 짊어지게 되는 당사자는 정작 동맹국이나 적대국이 아닌 미국 수입업자들이나 미국인 소비자들이다. 관세 등으로 해외 부품이나 원자재 등 상품 가격이 오르면 결국 미국인들은 수입품에 대해 더 높은 가격으로 구매해야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관세를 걷을 목적으로 최근 설립하겠다고 한 ‘대외수입청’도 결국 미국 소비자와 미국 수입업자들에게 돈을 걷게 될 것이다. 결국 자신의 지지자들까지 소외시키게 될 것이라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력을 동원한 영토 야욕도 드러냈다.

▶트럼프는 적대국보다 동맹국들에게 더 가혹하게 대하는 특징이 있다. 지난 2~3주 동안 그는 캐나다, 덴마크에 대해 꽤 끔찍한 발언을 일삼았다. 이런 발언은 동맹 관계에 분노와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최근 캐나다와 그린란드 등에 영토 야욕을 드러내는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은 터무니없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발언이 동맹국들에게 충격을 안긴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예측 불가능한 발언들로 동맹국들을 꼼짝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은 트럼프 집권 2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동맹국들이 보편 관세 부과 등 트럼프의 잘못된 정책 방향에 맞서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긴밀히 협력한다면 트럼프 행정부에서 발생할 혼란을 안정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트럼프의 정책들이 동맹국과의 파트너십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익 또한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줘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회담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해당 협정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 고(故) 아베 총리의 밀착 외교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책이나 이념보단 상대와의 관계에 집중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한국이 어떻게든 트럼프 대통령과 그러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에번스 리비어는 누구?

에번스 리비어는 2005년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지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관의 대리대사 및 부대사를 역임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을 만큼 대표적인 ‘지한파’으로 꼽힌다. 현재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동아시아 정책연구 선임연구위원이며, 올브라이트스톤브릿지 그룹의 수석국장이다.

정목희·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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