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크라시’의 도래?!…‘추락한 한국’ 어쩌다 [북적book적]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윤 대통령 극성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후 서부지법 외벽이 파손돼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윤 대통령 극성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후 서부지법 내부가 파손돼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이 습격당했다. 재선에 실패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를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극우 단체의 소행이었다. 트럼프는 대선 결과에 불복했고 부정 선거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과 현장 집회 등에서 “나라를 위해 지옥같이 싸우라”며 군중을 선동했다.

#. 2025년 1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구속되자 이에 반발한 극성 지지자들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 서부지법을 습격했다. 이들은 판사실로 가는 창과 외벽, 스크린도어를 부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영장을 내준 판사를 찾았다. 윤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런 시위대에게 “애국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미국과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두 사건이다. 미국 정치학자 바버라 F. 월터의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는 완전한 독재도 민주주의도 아닌 중간 상태, 즉 아노크라시(anocracy)로 추락한 국가는 내전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 몰려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극우 지지자들이 2020년 11월 대선 결과(트럼프의 패배)에 항의하며 의사당 난입을 시도하고 있다. [EPA/연합]


책은 한때 신성불가침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선진국들이 민주주의의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내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나라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점차 심화되고, 독재를 지향하는 정치인이 정치적 불안정성을 조장한다. 소셜미디어는 파벌적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전락해 극단주의를 부추기는데 사용된다.

일부 특권 세력은 횡포를 부리며 군중을 선동하고, 그 결과로 간헐적으로 폭력 사태나 테러 행위가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트럼프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겠다고 공약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실제 행동에 옮겨 때아닌 ‘계엄령’을 선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발발한 수백 건의 내전을 연구해온 저자는 “미국에서 두 번째 내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점차 불안을 느끼고 있다”며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언제나 평화가 지배할 것이라고 믿어 왔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 이래, 민주주의 국가의 수가 급증했다. 이와함께 내전이 발발된 횟수도 상당히 증가했다. 내전도 민주주의와 나란히 증가했던 것. 한 나라가 험난한 이행 과정을 거치지 않고 완전한 독재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옮겨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독재적 특징보다 민주적 특징이 더 많은 아노크라시가 정치 불안이나 내전을 겪을 가능성이 독재 정부보다 2배, 민주 정부보다 3배 높았다.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는 것은 가장 가난하거나 가장 불평등하거나 종교적으로 가장 이질적인 곳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저자는 “아노크라시에서는 새로운 정부가 종종 허약하고, 법치가 아직 발전하는 중이기 때문에 한때 이득을 누렸던 시민들은 영향력이 상실돼 자신이 보호받을지 확신하지 못한다”며 “그래서 미래에 대한 진정한 불안이 조성될 수 있다”고 했다. 이들 관점에서 보면, 경쟁자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를 기다리느니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힘이 강할 때 싸움을 벌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내전 가능성을 높이는 파벌화를 소셜미디어만큼 심화시키는 요인이 없다고도 진단한다. 트럼프가 매일 스무 번씩 하던 트윗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때 미국의 집단적 분노가 줄어들었던 현상이 대표적이다. 파벌주의를 움직이는 중심적 힘은 ‘음모론’이기 때문에 혐오와 가짜 정보 유포를 억제하면 내전 발발 위험성도 크게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내전은 일종의 각본에 따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불붙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똑같은 양상으로 벌어진다는 게 그래도 이 책의 희망적인 기대다. 내전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가 개시하며, 무엇으로 촉발되는 것인지 알면, 그 징후들을 포착해 내전 발발 가능성을 낮출 수 있어서다.

“세계는 1700년대 말 이래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이제 더 이상 농장을 소유한 백인 남성들만의 것이 아니다. 여성, 농촌과 도시와 교외의 가족, 이 나라에 태어난 사람들과 목숨을 걸고 여기로 온 사람들, 백인과 흑인과 황인과 혼혈인, 그 밖에도 온갖 사람의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들 모두가 필요하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바버라 F. 월터 지음·유강은 옮김/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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