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관리 권한 낮은 원청에 과도한 처벌 반복
법 시행 전후 산재 사망자수 큰 변화 없어
“법률 불확실성 해소 못해 사업장 혼란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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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자총협회 본사 [헤럴드 DB] |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처법)이 오는 27일 시행 3년째를 맞는 가운데 법안의 불명확성과 모호성으로 인해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순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23일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는 ‘중대재해처벌법 판결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월 중처법 시행 이후 검찰이 기소한 관련 법률 위반 사건 가운데 총 31건(2024년말 기준)에 대해 법원판결(1심)이 내려졌다.
이 가운데 유죄 선고는 29건, 무죄 선고는 2건으로 법원이 유죄 선고를 내릴 때 인용한 중처법 위반 조항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24건, 시행령 제4조 제3호)과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22건, 시행령 제4조 제5호)이 가장 많았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16건(51.6%)으로 가장 많았으며, 제조업(12건)·기타업종(공동주택관리업 2건, 폐기물처리업 1건)이 뒤를 이었다. 규모별로는 중소기업(50~299인)이 27건(87.1%), 중견기업(300~999인)이 4건(12.9%)으로 나타났으며, 대기업(1000인 이상)에 대한 판결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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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처법 실형선고 사례 표 [경총 제공] |
이와 관련 보고서는 “중처법의 불명확성과 모호성으로 법 적용 및 해석에 많은 논란이 존재했다”며 “법원의 실체적 진실 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수사기관의 해석과 판단이 여과 없이 인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부분의 판결은 사고원인을 ‘중처법 의무 위반’으로 간주했는데, ‘해당 의무를 경영책임자가 준수했더라면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정도로 상당한 인과관계를 명확히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청근로자 사망사건 발생 시 지배·관리 권한이 낮은 원청에 과도한 처벌을 내리는 것 역시 문제점으로 꼽았다. 경총 측은 “하청근로자 사망사건을 다룬 중처법 판결문(14건)을 보면 모두 하청근로자에 대한 모든 안전·보건조치를 원청이 해야 한다는 식의 판결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원청(도급인)과 하청(수급인)의 지위와 역할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은 채 유죄를 선고한 것으로, 안전 원리에 맞지 않는 것은 물론 형평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경총은 또한 형벌 법규의 엄격 해석 원칙(확장해석금지)에 위배되는 해석과 소규모 기업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집중된다는 점도 문제삼았다. 보고서는 “중소기업에 대해 중처법 기소가 집중되고 유죄 판결로 이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인력·재정이 열악한 소규모 기업 대표의 형사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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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사고 사망자 현황 표 |
경총은 이러한 문제점들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중처법을 통한 사망재해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중처법의 엄벌 취지에도 불구하고 법률 제정이 산업현장의 중대재해 감소에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중처법 제정 이전에도 사망사고는 더디지만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으며, 법이 시행된 2022년 전후를 비교하더라도 사고 사망자 감소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고 밝혔다.
실제 중처법 시행 전인 2021년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에 따른 사고 사망자 수는 248명으로 법 시행 이후인 2023년(244명)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현재까지의 중처법 판결은 검찰의 공소 사실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해 유의미한 내용을 찾기 어려우며, 법률의 불확실성도 해소하지 못해 사업장 혼란을 지속시키고 있다”며 “시행 3년을 앞둔 시점에서 중처법 이행가능성과 예견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부와 국회가 하루 빨리 법령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