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및 스페이스X CEO간 끈끈한 관계가 드물게 의견 차를 나타내 주목된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 하루 전인 1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MAGA 승리 집회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머스크의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AFP]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720조원 규모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계획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해 파장이 일고 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퍼스트 버디(1호 친구)’로 알려진 머스크 CEO의 이례적 찬물에 트럼프와 머스크 사이에 첫번째 균열이 노출됐다는 지적이다. 머스크의 이같은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큰 규모”라 소개한 AI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인 오픈AI를 견제한 발언이라 분석도 나온다.
22일(현지시간) 머스크 CEO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AI 인프라’ 구상에 일침을 놓았다. 그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들 회사에 대해 “그들은 실제로는 (그만큼) 돈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프트뱅크는 100억 달러 미만의 돈을 갖고 있다”라면서 “나는 이를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챗GPT를 만든 오픈AI, 기업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 3사의 합작회사 ‘스타게이트’ 설립 추진을 발표했다. 스타게이트는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회사로 알려졌다.
해당 기업들은 합작회사를 위해 1000억달러(약 143조)를 초기에 투자할 방침이다. 또한 앞으로 4년간 스타게이트에 최대 5000억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 회견에서 “1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면 “이 기념비적 사업은 미국의 자신감에 대한 표명”이라고 강조했다.
스타게이트에 투자하는 소프트뱅크는 지난달에도 10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계획을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발표한 바 있다. 소프트뱅크 그룹의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은 전날 회견에서 이를 거론하면서 “5000억 달러를 들고 돌아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첫 공식행사에서 발표한 야심찬 프로젝트에 머스크 CEO가 찬물을 끼얹자 미국 언론은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이후 머스크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난달 미국 내 기술직 체류 비자(H-1B) 문제로 골수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진영과 머스크 간 ‘내전’이 벌어졌을 때에도 머스크의 편을 들어줬었다.
미 정치매체 악시오스는 “5000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깎아내리는 것은 트럼프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둘 사람의 사이가 악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 CEO와 알트먼 CEO와의 관계를 조명했다. 이 매체는 “두 사람은 오픈AI를 같이 설립했지만, 머스크는 나중에 회사를 떠났으며 머스크는 알트먼을 경멸하고 있다고 머스크와 가까운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픈AI의 샘 알트먼 CEO도 머스크에 발끈했다. 그는 머스크 CEO에게 답글을 통해 “틀렸다. 당신도 (틀린 것을) 확실히 알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국가에 최선인 것이 항상 당신 회사에 최선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깨닫고 있다”면서 “그러나 당신의 새 역할에서는 당신이 (미국을) 최우선으로 두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실제 스타게이트는 투자자를 유치해 1000억달러를 마련한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소프트뱅크, 오픈AI, 오라클 외에 UAE(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정부의 MGX가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WSJ은 나머지 4000억달러에 대해 “소프트뱅크가 제3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한 스타게이트의 기술 파트너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엔비디아,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이 합류해 외부 투자금 유지가 용이할 가능성도 커졌다.
다만, 일각에선 머스크 CEO의 발언이 완전히 신빙성이 없는 건 아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프트뱅크는 거액을 투자할만큼 자금 여유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은 “소프트뱅크는 약 300억달러의 현금을 보유 중이다”며 “오라클 역시 부채가 많은 기업으로 약 11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 중”이라고 전했다. 아모데이 CEO도 블룸버그 뉴스와 인터뷰에서 스타게이트 합작 투자에 대해 “약간 혼란스럽다”며 “실제로 얼마나 많은 돈이 연관돼 있고 그중 얼마나 투입되기로 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몇 가지 불명확한 상황이 있음에도 스타게이트 발표가 이뤄진 데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WSJ은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해당 발표는 성급하게 이뤄졌다”고 전했다. 또한 이번 발표에는 조 바이든 정부 시절부터 추진되던 데이터건설 프로젝트도 포함됐다고 WSJ은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AI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풀고, 투자 유치를 통해 AI 산업을 미국이 주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스타게이트를 ‘마가노믹스’ 성과로 만들기 위해 발표를 서둘렀다는 분석이다. 마가노믹스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경제학(Economics)’을 합친 용어로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뜻한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새 행정부가 기술업계 성장을 장려할 것임이 분명해보인다”면서 “정부가 첨단 분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김빛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