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권 보강 위한 자의적 영풍 주주권 제한
법원 판단 받았던 한진칼 분쟁 사례 ‘대조’
‘합법’ 주장에 두산 사태 데자뷔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고려아연 주주들이 주주총회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 서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모자회사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어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발상 자체가 고려아연의 자산 규모에 걸맞지 않은 행보다.”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가 예정된 가운데 현장에 참여한 법률 전문가는 고려아연을 이같이 평가했다. 전일 고려아연이 호주 소재 손자회사 썬메탈코퍼레이션(SMC)을 활용해 지배주주인 영풍과 순환출자 관계를 만든 점을 지적한 발언이다.
구체적으로 SMC는 영풍의 지분 10.3%를 장외에서 취득했다. 이로 인해 ‘영풍→고려아연→썬메탈홀딩스→SMC’의 단순 출자 관계 끝에 ‘영풍’이 추가됐다. 고려아연을 중심에 두고 모회사와 자회사 간 순환출자 고리가 완성된 상황이다. 공정거래법은 기업의 순환출자를 엄격하게 제한하지만 ‘해외법인’은 예외다.
상법상 한 기업의 자회사가 그 모회사 주식 10% 이상을 소유하면 기업에 대한 의결권은 사라진다. 물론 이 역시 ‘국내법인’에만 해당되지만 고려아연은 상법에서 적용 법인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아 해외 자회사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고려아연 지분 25.42%를 소유한 영풍이 이번 임시주총에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0%’라는 게 최 회장 측 입장이다.
23일 장중 고려아연은 코스피에서 시가총액 15조원대를 기록하며 상위 30위 안에 랭크돼 있다. 작년 9월 말 연결기준 자산총액은 14조원에 육박한다. 규모 있는 자산을 감안하면 상법, 자본시장법 등 법 테두리는 물론 거래소와 금융당국으로부터 유무형의 의무와 책임을 요구 받는 기업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 한진칼 경영권 분쟁 사례처럼 상대방 의결권을 제한하고 싶었다면 법원에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적법한 절차를 밟았어야 한다”라며 “시장에 영향력이 큰 고려아연 정도의 기업이 모든 절차를 건너 뛰고 자의적으로 영풍 의결권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른 법률 전문가 역시 “고려아연이 영풍 의결권은 없어졌다는 가정 하에 주총을 진행한다면 이번 주총 결과 자체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2020년 한진칼에서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KCGI-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반도건설 등 3자연합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지분 경쟁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3자연합은 조 회장 우호 주주로 분류됐던 대한항공사우회 등이 지분 공시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며 그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당시 법원은 해당 가처분을 기각하면서 3자연합은 분쟁 상대 측 의결권을 제한하진 못했다.
고려아연은 모자회사 순환출자와 영풍의 의결권 제한 과정에서 ‘합법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진 못할 전망이다. 작년 7월 두산그룹 역시 법적 절차를 따라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했으나 지배주주에만 유리하고 계열사 기업가치가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뭇매를 맞았다. 당시 개인주주와 외국인, 기관투자자는 물론 금융당국에서도 비판이 지속되자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