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와 비핵화 가능”…북한 언급 안 해 [트럼프 2기]

트럼프, WEF 화상 연설 핵군축 추진 시사

“나토회원국 방위비 GDP 5% 인상” 되풀이

 

 

“(2020년 대선 전) 푸틴은 핵무기를 대폭 줄이는 아이디어에 대해 매우 좋아했다. 중국도 동참했을 것이다. 나는 비핵화(denuclearize)가 매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진행한 실시간 화상연설에서 이같이 밝히며 핵군축 추진을 시사했다. 다만 북한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들의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늘려야한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핵무기의 파괴 능력을 언급하면서 러시아 및 중국과의 핵군축 협상과 관련해 “우리는 비핵화(denuclearize)를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데, 나는 그것이 매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2020년) 대선 선거 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양국간 비핵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서 “(그대로 진행됐다면) 중국도 따라왔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푸틴은 핵무기를 대폭 줄이는 아이디어에 대해 매우 좋아했다”면서 “푸틴과 나는 (당시) 그러길 원했다. 우리는 중국과도 좋은 대화를 나눴으며 그들도 동참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든 나라들이 (핵 군축에) 따라오게 했을 것”이라면서 “이것은 지구를 위해 믿을 수 없는 일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중국의 핵 능력과 관련해 “중국은 지금 미국보다 상당히 적은 핵무기가 있지만 그들은 향후 4~5년 내 따라잡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비핵화(denuclearization)는 핵 군축(nuclear disarmament)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핵 군축은 전략 핵무기 등의 규모를 서로 제한하는 개념이며 비핵화는 핵무기 자체를 없애는 콘셉트다. 미국은 러시아와 전략 핵탄두 제한을 골자로 한 신(新)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을 체결한 상태지만, 러시아의 참여 중단 선언으로 내년 2월 종료될 예정이다. 중국은 미국과 별도의 핵 군축 관련 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인 지난 2018년 10월 러시아가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순항미사일(SSC-8.이스칸데르-K)을 개발해 실전 배치함으로써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위반했고, 중국이 이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것은 불공평하다며 지난 1987년 미국과 구소련이 체결해 지켜오던, 중거리 핵무기 폐기조약인 INF에서 탈퇴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핵 관련 발언에서 북한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20일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했으며 대선 때는 북한이 핵무기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 잘 지내는 것이 좋다는 취지로 수차례 발언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1일 미 워싱턴에서 열린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자 안보협의체)’ 외교장관 회의 공동성명에선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빠졌다. 쿼드 회의 후 미 국무부가 공개한 공동성명에서도 북한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북 정책의 초점을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및 동결’ 등에 맞추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전화 통화와 관련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시 주석과의 관계가 한때 어려워졌다면서 “나는 시진핑을 많이 좋아하며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는 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중단시키는 데 있어 우리를 돕길 바란다”면서 “중국은 그 상황에 대해 많은 힘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중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WEF 포럼 전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될지 묻는 질의에는 “러시아에 물어봐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준비됐다”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평화 협상(settlement)을 위한 노력이 기대를 갖고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장을 ‘킬링 필드(killing field·대량 학살 현장)’로 부른 뒤 “그것을 완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며 “전쟁을 끝내기 위해 곧 푸틴 대통령을 만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전쟁 휴전 상황에 대해선 “우리는 중동에서 많은 진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들이 내는 방위비를 현행 목표치(2%)의 두배 수준인 GDP의 5%까지 올려야한다는 주장을 이날에도 되풀이했다.

그는 “우리는 해외에서 힘과 평화, 안정을 되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라면서 “나토 회원국에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인상할 것을 요청할 것이다. 사실 수년 전에 이렇게 돼야 했었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방위비 인상 발언은 지난 1기 행정부에서도 언급됐는데, 이후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결과적으로 인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CNBC 방송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나토 방위비를 GDP 2%까지 맞춘 국가는 6개 회원국에 불과했던 반면, 지난해 들어선 23개 회원국이 이에 준수했다.

트럼프가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인상을 재차 언급하면서 회원국들 사이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지난 22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서 행간을 읽는 대신 숙제를 하자”며 나토 회원국에 방위비 지출을 늘리라고 촉구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도 같은 날 “전쟁을 막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해 방위비 증액에 동조했고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마코 루비오 신임 미국 국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유럽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고 대서양의 방위산업 생산을 증강하면 우리 모두가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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