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MBK, 김광일 부회장 등 이사회 진입 실패
‘순환출자 고리’ 일단 통했지만 소송 변수 여전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 현장 [고려아연 제공] |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이 전날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영풍과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이사회 장악을 저지하고 경영권 방어에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영풍·MBK 측이 법적 대응을 강력하게 예고하면서 양측간 다툼은 ‘연장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전날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일부 변경의 건’과 ‘이사 수 상한 설정 관련 정관 변경의 건’ 등을 차례로 의결했다. 당초 임시 주총은 오전 9시 개최 예정이었지만, 주주 명부 확인과 의안 투표 결과 집계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오후 1시 53분에야 열렸다.
표결 과정에서도 고려아연과 영풍·MBK 측은 날 선 공방을 이어갔고, 오후 10시를 넘겨 폐회하는 등 사실상 파행이 계속됐다.
이날 임시 주총에서는 핵심 안건으로 주목받았던 ‘이사 수 상한 설정 관련 정관 변경의 건’이 표결 결과 출석 의결권의 약 73.2% 찬성으로 가결되면서 승부가 갈렸다. 이 안건은 현재 제한이 없는 고려아연 이사회 이사 수의 상한을 19명으로 설정하는 내용으로, 최 회장 측이 제안한 내용이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 구성은 최 회장 측 이사 11명 대 영풍 측 이사 1명의 ‘11대 1’ 구조인 상황에서, 영풍·MBK 측은 이번 임시 주총에서 추천 이사 14명을 이사회에 새로 진입시켜 과반을 확보, 이사회를 장악하겠다는 구상을 세운 바 있다. 최 회장 측은 여기에 이사 수를 19명으로 제한하는 안건을 상정하며 맞섰다.
고려아연 임시 주총장 [고려아연 제공] |
이날 표 대결에서 이사 수 상한 설정안 가결로 영풍·MBK 측이 차지할 수 있는 이사 자리가 최대 7석으로 제한됐다.
이어진 이사 선임안 투표에서는 고려아연 측이 추천한 이사 후보자 7명이 모두 과반 득표를 얻어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됐고, 김광일 MBK 부회장과 강성두 영풍 사장 등 MBK·영풍 측이 추천한 14명은 각각 20∼30% 찬성 득표로 상위 7위 안에 들지 못해 이사회에 진입하지 못했다.
팽팽할 것으로 예상됐던 표대결에서 희비가 엇갈린 것은 고려아연이 전날 단행한 순환출자로 지분율이 25.42%에 달하는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고려아연은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에 최 회장 일가의 영풍 지분 약 10.3%를 넘기면서 ‘고려아연→SMH→SMC→영풍→고려아연’의 순환구조를 형성했다. 이는 상법 369조 3항에 따라서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게 돼,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게 된다.
앞서 고려아연 지분은 MBK·영풍 연합이 40.97%, 최 회장 측이 우호 지분을 합해 34.35%였던 격차는 이번 조치로 MBK·영풍 측 지분이 40.97%에서 15.55%로 축소되면서 되레 역전됐다.
김 부회장은 이번 조치에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서 고려아연 앞날을 반드시 바로잡고 무도한 일을 벌이는 현재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를 고쳐야 한다”면서 “영풍의 주식을 전격적으로 사들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은 고려아연의 손자회사, 우리 입장에선 증손자 회사라 SMC가 사용한 575억원 중에서 270억원은 우리 돈과 다름없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그러한 돈이 정당한 주주의 권리를 방해하기 위해, 특히 1대 주주의 권리를 방해하기 위해 부당하게 사용된 점에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주총에는 최 회장 측 우호지분으로 분류됐던 현대자동차그룹과 한화 등은 주총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의결권 행사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번 임시 주총이 재계에서 예민한 집중투표제 등의 사안을 담고 있는 만큼, 재계 전반에서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인 것으로 추측된다.
집중투표제란 이사 선출 때 후보별로 1주당 1표씩의 투표권을 주지 않고 1주당 뽑을 이사 수만큼 투표권을 부여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번 주총에서는 1-1호 의안으로 발의됐다.
집중투표제는 지분율에서 열위에 놓인 최 회장 측이 가족 회사인 유미개발을 통해 제안했다. 안건은 상법상 ‘3% 룰’이 적용된 표결을 거쳐 통과됐다. 다만, 법원이 영풍·MBK 측이 신청한 의안 상정 금지 가처분을 지난 21일 인용하면서 이날 의안 가결에도 불구하고 적용은 다음 주총부터로 미뤄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