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헤럴드경제 회원 전용 콘텐츠 ‘HeralDeep’에 게재됐습니다. 회원으로 가입해 글로벌 석학들이 전하는 AI·국제정치경제·지경학에 대한 통찰을 ‘영어 원문’으로 만나세요.
아이켄그린 |
한국이 올해 난관에 부닥쳤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절제된 표현’일 것이다. 아직 새해 벽두인 만큼, 이보다 더 절제된 표현이 필요한 순간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어쨌든 지금 한국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느긋하게 앉아 있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우선 한국의 국내 정치가 아수라장이다. 대통령 탄핵, 국무총리 권한대행 퇴진, 주요 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 등 이슈가 산적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순순히 물러나기는커녕 전혀 물러나지 않을 모양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유죄 판결에 항소했다. (그러지 않으면 올해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이 일들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지만, 그에 반해 경제 예측은 ‘누워서 떡 먹기’다.
이런 혼란이 탄탄한 거버넌스와 안정적인 민주주의라는 한국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치 불안이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리라는 점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미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각종 연구를 통해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에 미치는부정적인 영향을 입증해 놨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니콜라스 블룸 교수는 정치적 상황이 불확실하면 자본 위험 프리미엄이 상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주식 시장을 침체시킨다는 말을 현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지아 대학교의 비카스 아가왈 교수에 따르면 정치적 혼란으로 불안감을 느낄 경우, 가계는 주식을 처분하고 돈을 침대 밑에 쌓아두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베이징 소재 대외경제무역대학의 웨이싱 우(Wexing Wu) 교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가계는 소비 지출을 줄인다고 지적했다. 툴레인 대학교의 캔디스 젠스(Candace Jens)는 정치가 불안하면 기업은 투자 사업의 자금이 되는 부채와 자본의 발행을 연기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여러 지표를 볼 때 한국의 가계와 기업 역시 이런 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소비자 심리는 지난 12월에 직전 4개월보다 훨씬 더 위축됐다. 앞으로 가계 지출이 더 줄어들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기업 신뢰 전망치 역시 지난 12월 대폭 하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전월 대비 낙폭을 기록했다. 투자가 감소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응해 전 세계 은행들과 신용평가사들은 2025년 한국의 GDP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발생했다. 코스피가 반등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2025년 1월11일)에 코스피는 윤석열 대통령이 분노에 차 계엄령을 선포했던 12월 3일보다 더 상승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주식 시장에 미친다던 학술 연구와는 전혀 다른 결과다. 코스피는 원래 한국 기업의 예상 미래 이익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이익은 한국의 성장과 수출에 좌우된다. 누군가는 지금 이런 성장과 수출이 12월 초만큼 견조하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은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더라도 한국이 이 경제적 난관을 수출로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과거에도 늘 그랬듯 말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으로 대미 수출길은 더 험난해질 것이다. 트럼프는 관세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한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마저 너무 적다고 불평하고 있는 마당이니, 한국은 관세 압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한국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시장인 중국은 경기 둔화, 더 심하게는 일본식 디플레이션에 빠질 징조를 보인다. 중국 당국은 뒤늦게 경기 부양 조치에 나서고 있으나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를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는 한, 대중국 수출은 더 힘들어질 뿐 쉬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코스피와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한국의 여타 정책 입안기관들이 신중하고 건설적으로 대응한 덕분일 것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이 실패로 끝난지 하루 만에, 한국은행은 긴급 조치를 발표하고 시장 진정시키기에 나섰다. 단기 유동성을 확대하고 필요시 외환 시장에 개입할 준비를 했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은행들을 압박해 외화 대출의 만기를 연장시켰다. 통화 시장의 변동성에 타격을 받은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표자들은 신용평가기관과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 경제는 앞으로도 튼튼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거라고 안심시켰다. 정치인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온갖 잡음을 만들 수 있지만, 기술 관료들은 각자의 소임을 능숙하게 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제 금융 상황이 정치적 사건들의 영향권에서 영원히 벗어나 있을 수는 없다. “내전”으로 격화될 가능성을 비롯해 정치적 수사가 고조된다면, 소비자 신뢰도, 투자자 심리 및 경제는 심각하게 손상될 것이며, 그때 가서는 한국은행이든 누구든 손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윤석열 지지지와 반대 세력, 혹은 대통령경호처와 경찰, 군 등 기타 정부 부처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이 상황을 보고 있으면 2021년 1월 6일 워싱턴 D.C.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떠오른다. 도널드 트럼프의 강성 지지자들이 국회 의사당에 난입해 현역 의원들을 위협했고, 경찰관 5명이 순직했다. 그러나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꼭 기억해야 한다. 정치 질서는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아갔다. 의사당에 침입했던 무리는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를 선고받았다. 미국 증권 시장은 거의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오히려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즉, 한국도 아직 영구적인 피해를 막을 기회가 있다는 의미다. 2004년과 2016년의 대통령 탄핵은 시장 분위기나 경제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머지않아 상황이 정상으로 회복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한국은 정상 회복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필자를 비롯해 한국을 잘 아는 이들은 한국이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