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리’가 왜 트럼프 취임사에 나와…‘정체’ 뭐길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북미 지역 최고봉인 디날리의 이름을 매킨리산으로 개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FP]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해발 6100m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디날리산. 알래스카에 위치한 이 산이 지난주 열린 제47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사의 일부를 장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디날리산의 이름을 윌리엄 매킨리 전 미국 대통령 이름을 딴 ‘매킨리(McKinley)산’으로 바꾸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디날리산은 과거 매킨리산으로 불렸다가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다시 디날리산이 된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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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리도 오른 적 없는 ‘원주민의 산’

미국 알레스카에 있는 디날리산은 고대부터 알레스카에 살았던 아타바스카 원주민들에 의해 ‘디날리’로 불렸다. 디날리(Denali)는 아타바스카어로 ‘높은 산’이란 뜻이다. 1896년 이 지역을 탐사하던 한 금광 채굴업자가 공화당 정치인인 윌리엄 매킨리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매킨리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선 후보였던 매킨리는 1897년 미국의 2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 덕에 ‘매킨리산’이라는 이름이 미국인들 사이에 통용됐고 결국 1917년 매킨리산이라는 이름이 미 정부로부터 공식 승인됐다. 같은해 매킨리산국립공원법도 생겼다. 매킨리 전 대통령의 이름을 땄지만 정작 매킨리는 해당 산을 방문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북미 지역 최고봉인 디날리의 이름을 매킨리산으로 개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P]

그러나 알레스카 원주민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이름을 빼앗긴 셈이다. 원주민은 이후에도 매킨리산을 여전히 디날리산이라고 불렀다. 알래스카주도 1975년 원주민 사회 등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 차원에서 이 이름을 공식적으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알래스카주 국회 의원들도 연방 정부에 디날리산을 사용하도록 요구했으나, 미국 지명위원회(BGN)는 이 요구를 수십 년간 거부해왔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2015년 매킨리산 이름을 디날리산으로 바꿨다.

트럼프 롤모델인 ‘관세왕’ 매킨리…영토확장 꿈꾸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집무실에서 서명한 행정명령을 들어 올리고 있다. [로이터]

그로부터 10년 후인 2025년, 트럼프 대통령은 제 47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위대한 매킨리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매킨리산’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기간 지지자 연설에서도 매킨리산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연설장에서 “그들이 그(매킨리의) 이름을 매킨리산에서 뺐다”며 “그는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매킨리는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에 매킨리산의 이름을 되찾아올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 오바마 정부 시절 조치한 산 이름 변경을 30일 내 철회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AP통신에 따르면 리사 머코프스키 미국 상원의원은 성명을 통해 “디날리산은 수천년 동안 디날리산을 관리해 온 알레스카 원주민들이 정당하게 부여한 이름이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돈로 독트린. [뉴욕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그가 보여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행보와 관련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당선인 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자신의 주장을 ‘먼로 독트린’에 빗대 ‘돈로(도널드와 먼로의 합성어) 독트린’으로 표현한 뉴욕포스트 1면 사진을 게시한 적이 있다.

사진에는 트럼프 당선인이 캐나다를 ‘51번째 주’, 그린란드를 ‘우리 땅’ 등으로 표기한 지도를 가리키는 모습이 담겼다. 멕시코만과 파나마 운하도 각각 ‘아메리카만’과 ‘파나-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하’로 표기됐다. 영토확장을 통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이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가 바꿔도 디날리 기억할 것”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정책인 ‘마가노믹스(Maga+Economics)’에 매킨리 전 대통령을 다시 소환하려는 의중도 있다. 1897년 취임한 매킨리 전 대통령은 강력한 관세 장벽을 통한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괌, 하와이를 미국 영토로 병합해 트럼프 대통령이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에도 산 이름을 바꾸는 이유를 “미국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 제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1897~1901년 재임). 미국 번영을 목표로 고율의 수입관세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제라드 M. 스미스 알래스카 앵커리지 대학 인류학 교수 뉴욕타임스(NYT)에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디날리라는 이름은 계속 사용될 것”이라며 “공식 이름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수천 년 후에도 디날리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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