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날아오른다는 SK, 더 떨어진다는 삼성…잔칫집·초상집 가른 HBM [김민지의 칩만사!]

HBM 하나로 실적도 분위기도 ‘천지차이’
범용 D램 하락·고성능 수요 폭발로 양극화 심화
‘근거있는 자신감’ 보인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상반기가 최대 고비
목표 미달로 투자 신뢰 잃은 삼성전자
컨콜 및 주총서 투명한 성과 공개로 신뢰 회복해야


올해 HBM을 기점으로 반도체 시장의 양극화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에 이어 역대급 연간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범용 D램 하락 및 HBM 공급 지연 등으로 상반기까지 고전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챗GPT, 망고보드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김민지의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여긴 잔칫집인데, 저긴 완전 초상집이네”

HBM 하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분위기가 ‘천지차이’입니다. 지난해 ‘HBM 효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SK하이닉스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출 수가 없는 모습입니다.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 전반에서 엄청난 자신감이 느껴질 정도였죠.

반면,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까지 고난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선 3분기에야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할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메모리 시장의 양극화는 더 커질 전망이어서 HBM 시장의 주도권을 상실한 것이 특히 치명적입니다.

임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져있습니다. 직원들은 민족 대명절인 설에 친척들로부터 삼성전자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을 듣게 될까 벌써부터 주눅들어 있는 모습입니다. 매번 삼성전자에 대해 부정적 전망만 적어야 하는 기자의 마음도 솔직히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오늘은 지난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운명을 가른 몇가지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언제쯤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칩만사에서 알아봅니다.

하반기 ‘HBM으로만’ 9.5조 벌어들였다


우선 자신감 ‘충만’이었던 SK하이닉스의 최근 실적발표부터 살펴볼까요?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8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습니다. 삼성전자 가전, 스마트폰 등 전사의 영업이익을 합친 것보다 높았습니다. 여기에 영업이익률은 무려 41%에 달했습니다. 단순하게 100억원을 팔면 그 중 41억원을 마진으로 남겼다는 의미죠. 제조업에서 참 보기 어려운 수익률입니다.

“지난해 HBM 매출은 전년(2023년) 대비 4.5배 늘었다. 올해 HBM 매출은 지난해 보다 2배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일부 고객과 2026년 HBM 공급 물량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SK하이닉스 실적발표 컨콜)

2023년 4분기만 해도 SK하이닉스의 전체 D램 매출에서 HBM은 16%의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1년 사이에 40%로 급증했죠. HBM은 일반 범용 메모리보다 가격이 최소 3~5배 정도 비싸 수익성이 매우 높습니다. SK하이닉스의 호실적에서 HBM이 차지하는 효과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던 포인트입니다.

SK하이닉스는 HBM으로 정확히 얼마를 벌었던 걸까요? IR 자료를 통해 대략적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19조767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이중 D램 매출은 74%를 차지합니다. 다시 여기서 40% 이상이 HBM에서 발생했다고 하니, 최소 약 5조8510억원이라는 값이 나옵니다. 같은 방법으로 계산하면 지난해 3분기 SK하이닉스의 HBM 매출은 3조6376억원으로 추정됩니다. 하반기에만 HBM으로 9조5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한 셈이죠.

“HBM 앞으로도 잘 팔릴 것” 근거있는 자신감?


SK하이닉스의 HBM 신화는 계속 이어질 전망입니다. 올해 HBM 매출이 지난해 보다 2배 커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데, 금융투자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연간 HBM 평균 매출을 25조4155억원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해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4’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SK하이닉스 제공]


그렇다면 연간 실적은 어떻게 될까요. 업계에선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83조원과 33조원에 이를 것으로 봅니다.

연초인데 벌써부터 올해 연간 성적표를 예상하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하지는 않냐고요? 범용 D램과 달리 HBM이 수주형 메모리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HBM은 높은 안정성과 장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조사가 미리 만들어놓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사로부터 먼저 수주를 받고 제조에 들어가는 일종의 장기 계약 형태죠. 앞서 SK하이닉스가 일부 고객사와 이미 2026년 물량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올해도 HBM을 향한 빅테크 고객사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컨콜에서 “HBM의 성장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보느냐”라고 물었는데, SK하이닉스는 최근 AI 트렌드가 ‘추론’ 위주로 옮겨가면서 고성능 HBM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김기태 HBM 세일즈&마케팅 담당은 “최근 성능이 향상된 고급 추론 추세로 AI 시장이 전환되면서 더 높은 메모리 용량과 밴드위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인간 지능에 가까운 AGI(범용인공지능)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추론 과정에도 대용량 컴퓨팅 파워가 요구되기 때문에 AI 시장이 추론향으로 확장된다는 건 오히려 HBM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올 1월 미국 CES 2025에서 전시한 HBM3E 16단 제품. [SK하이닉스 제공]


또한, “AI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빅테크 업체들의 캐펙스(생산능력) 경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일반 기업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AI 관련 투자 계획도 발표되고 있어 AI 수요는 계속해서 기대치를 뛰어넘는 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며 “올해 CES에서 소개된 물리적 AI와 다양한 AI 에이전트로의 발전은 이를 구현하기 위한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함께 HBM 수요의 장기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HBM은 앞으로도 잘 팔릴 것”이라는 거죠.

범용D램 가격 하락 지속…삼성, 상반기가 더 문제


자, 이제 그럼 ‘원조 반도체 형님’ 삼성전자의 상황을 볼까요.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DS부문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15조원대로 추정됩니다. 1~3분기 DS부문의 누적 영업이익이 약 12조2200억원인걸 감안하면 삼성전자 DS부문의 4분기 영업이익은 2조원대 후반에서 3조원대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죠. SK하이닉스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더 큰 문제는 올해 상반기엔 실적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는 겁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달리 전체 D램 매출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로 낮습니다. 나머지 70~80%의 매출은 값싼 범용 D램에서 발생하는데, 올 상반기 가격 하락폭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즉,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죠.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범용 D램 가격은 3~8% 하락했고, 올 1분기에는 하락 폭이 8~13%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계절적 비수기와 PC, 스마트폰 등 소비자 수요 침체 탓도 있지만, 중국 공급업체들이 DDR4 생산을 늘리면서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는 영향도 큽니다.

SK하이닉스 측도 이번 컨콜에서 “중국산 D램 공급이 늘어나면서 DDR4 D램 가격이 영향을 받고 있어 올해도 범용 D램 가격은 당분간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DDR4와 LPDDR4와 같은 레거시(구형) 반도체의 매출 비중은 작년 20% 수준에서 올해는 한 자릿수로 크게 축소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연합]


엔비디아에 대한 HBM3E 공급이 1년 넘게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범용 D램까지 다시 불황이라니, 삼성전자로서는 정말 미쳐버릴 노릇일껍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간은 최근 HBM 시장의 성장세를 전망하는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올 3분기에야 엔비디아에 12단 HBM3E를 납품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지난해부터 HBM 공급 소식만 목 빠지게 기다려온 투자자들에겐 그야말로 충격적인 분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삼성전자는 왜 이렇게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삼성전자는 현재 8단·12단 HBM3E 공급을 추진 중인데, 여전히 퀄 테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CES 2025에서 “삼성전자는 HBM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폭탄발언’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1a 나노 공정 D램에 뭔가 문제가 있었고, 재설계가 필요한 건 사실인거 같습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4’에서 전시한 HBM3E 12단 제품 샘플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남긴 서명. [헤럴드DB]


여기서 잠깐 복습해볼까요. HBM은 여러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만듭니다. 삼성전자는 1a 공정으로 만든 D램을 HBM3E에 활용합니다. 10나노급 D램은 1x(1세대)-1y(2세대)-1z(3세대)-1a(4세대)-1b(5세대) 순으로 개발됐는데, 세대가 높아질수록 선폭이 좁아집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1a 공정 D램은 맨 처음부터 저전력 성능이 미흡했다고 전해집니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는 ‘전기먹는 하마’처럼 불릴 정도로 전력 소비 효율이 중요한데, 저전력 성능이 떨어지니 다시 재설계가 필요한 것이죠.

1a 다음 세대인 1b 공정도 1a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집니다. 첫단추를 잘못 끼니 1b 공정의 성능도 부족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내부에선 이를 쉬쉬했다고 전해집니다. D램 공정 기술은 삼성전자 기술력의 근간과 다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발생한 문제를 외면하고 덮어버리니 결국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진거죠. 삼성의 D램 경쟁력에 대해 ‘잃어버린 5년’이라는 얘기가 나오게 된 배경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HBM 공급 지연에 대해 “엔비디아에게 삼성전자 HBM이 그렇게 급하지 않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런 의견이 나오게 된 배경은 블랙웰의 발열 논란 때문입니다.

여러 외신들은 엔비디아가 최근 출하를 시작한 블랙웰 기반의 슈퍼칩 GB200의 발열 문제가 계속돼 고객사들이 주문을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발열 이슈로 판매량이 기대보다 낮아지면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기존 HBM 공급 물량으로 블랙웰 판매를 감당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신뢰잃은 삼성, HBM 목표 미달 인정할까


설 명절이 끝나는 31일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확정실적을 발표합니다. 업계에서는 컨프런스콜 내용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삼성전자는 지난해 컨콜 내내 HBM의 공급 계획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놨습니다.

7월 2024년 2분기 실적발표 컨콜에서는 “HBM3E의 본격적인 램프업과 캐파 확대 영향이 맞물리면서 하반기에는 HBM 매출이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라며 “HBM 매출은 매분기 2배 내외 수준의 가파른 증가에 힘입어 하반기에는 상반기 대비 3.5배를 상회하는 규모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죠. 또 “업계 최초 개발 및 샘플을 공급한 HBM3E 12단도 양산 램프업 준비를 마쳤다”며 “고객사 일정에 맞춰 하반기 공급 확대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10월 2024년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는 “예상 대비 주요 고객사향 HBM3E 사업화가 지연됐으나, 현재 주요 고객사 퀄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을 확보했다”며 “이에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강조했습니다. “4분기 HBM3E 비중은 50%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도 전망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발언들은 실제로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투자자들의 원성 섞인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3월 열린 삼성전자 제55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2024년 사업 전략 공유 및 주주와의 대화 시간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번 컨콜 때만큼은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보다 분명한 진행 상황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HBM3E 공급을 위한 1a 및 1b 나노 공정 재설계는 어디까지 마무리됐는지, 1c 나노 공정 양산 계획이 6개월 가량 밀린 이유는 무엇인지, SK하이닉스 보다 D램 기술력이 한 분기씩 뒤쳐지고 있다는데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인지 등 투자자들의 궁금증은 증폭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문제에 대해 쉬쉬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적극적인 모습. 그것이 투자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반도체 1위 삼성전자의 모습일 겁니다. 오는 3월 주주총회에 주요 경영진들이 총출동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국민 기업’에 걸맞는 위상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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