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연탄 4장에 허리 휘고 숨이 턱턱’ 다섯살 꼬마도 날랐다 [세상&]

사랑의 연탄나눔 참여해보니
서울에만 1300여가구가 연탄 사용
200장으로 겨울철 한 달 버텨
설 지나면 ‘연탄 보릿고개’
12월 비상계엄에 목표량 못 채우기도


25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의 연탄나눔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나르고 있다. 박지영 기자.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하나에 3kg짜리 연탄 4개, 어깨에 멘 지게에 도합 12kg의 무게가 올라가자 ‘헉’했다. 족히 60도는 돼 보이는 경사, 곳곳에 녹지 않은 얼음 때문에 한 걸음 딛기가 조심스러웠다. 연탄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어깨는 저절로 움츠러들었고 허리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100m를 왕복으로 3번 왔다 갔다 하니 숨이 거칠어졌다. 겨울인데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본격적인 설 연휴가 시작된 25일 오전 10시께, 서울 상계동에선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의 도움으로 연탄나눔활동이 진행됐다. 요새 누가 연탄을 쓰느냐 하지만 서울에서만 아직 약 1300여 가구가 연탄을 사용한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던 ‘백사마을’이 지난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1970년대 정착된 철거민 이주정착촌인 상계1구역이 노원의 유일한 달동네가 됐다. 이곳의 약 300여 가구가 연탄을 사용하고 있는데, 대부분 독거노인에다 거동이 어려워 겨울마다 연탄은행의 손길을 받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민인 이영자(86) 씨의 집 앞에 연탄이 쌓이고 있다. 200장을 쌓아놔도 추운 겨울이면 한 달 밖에 못 버틴다. 박지영 기자.


이날 준비된 연탄은 약 2000장. 한 집 당 200장씩 9가구에 연탄을 채워 넣어야 했다. 한 가구당 하루에 4~6장을 사용하니 이렇게 채워 넣어도 겨우 한 달 조금 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날 자원 봉사에 나선 인원은 50명, 한 사람당 40장은 날라야 하는 양이다. 손에는 목장갑, 팔에는 토시를 차고 봉사자들이 지게를 맸다.

이날 최연소 참가자는 5살인 황재이 양. 황양의 어머니인 이영나(39) 씨는 “남편하고 아기와 같이 왔다. 아기가 연탄이라는 걸 잘 모르기도 하고, 설을 앞두고 좋은 일을 하고 싶어 나서게 됐다”고 했다. 황양의 이날 목표는 3개를 나르는 것이다.

한 사람당 3장씩, 또는 4장씩 나눠서 본격적인 연탄 나르기에 들어갔다. 힘이 좋은 봉사자는 약 20kg 정도 나가는 6장을 한번에 나르기도 했다. 친구들과 9번 정도 연탄나눔행사에 참여해왔다는 이상혁(32) 씨는 오늘 이 비탈길을 10번 정도 오르내렸다.

25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의 연탄나눔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에만 1300여가구, 이 마을에만 약 300여가구가 연탄을 사용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이씨는 “그래도 여기 정도면 경사도 높지 않고 나름 해도 잘 드는 곳이라 눈도 다 녹아서 길이 위험하지 않다”며 “부천 쪽에서 봉사를 했을 때는 차가 아예 들어오지 못하는 비탈길이라 봉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힘이 빠졌었다. 오늘은 난이도 상중하 중에 ‘하’ 정도”라고 했다.

연탄나눔에 참여한 박재영(28) 씨는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연탄을 날랐다. 박지영 기자.


직장 선후배, 친구들과 삼삼오오 봉사를 하는 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직장 선배와 함께 온 박재영(28) 씨는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연탄을 날랐다. 박씨는 “연탄을 아직 쓰는 집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오늘 와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며 “6개 정도씩 12번을 날랐는데, 허리 근육을 쓰면 좀 낫다”며 나름의 팁을 주기도 했다.

박씨와 함께 온 직장동료 김준수(30) 씨는 연탄봉사만 7년 해 온 베테랑이다. 김씨는 “눈이 많이 오고 난 다음인 1월쯤이 봉사하기 제일 어렵다”며 “블랙아이스를 밟고 넘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돼 겨울에 1~2번씩은 봉사를 한다”고 웃었다.

기자도 연탄나눔에 참여했다. 연탄 4장만 올렸는데도 어깨는 움츠러들고 허리는 고꾸라졌다. 곳곳에 눈이 녹지 않고 얼어 있어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박지영 기자.


연탄은행에 따르면 매년 약 300만장의 연탄이 필요하다고 한다. 코로나19 직전이었던 2019년만 해도 약 513만장의 후원을 받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연탄 후원은 반 토막이 났다. 그래도 재작년인 2023년에는 393만장의 후원을 받아 필요량을 채웠지만, 올 겨울은 지난 연말 비상계엄의 여파로 후원이 줄며 전년에 비해 26% 정도 감소한 약 291만장을 준비하는데 그쳤다.

신정현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주임은 “12월 후원으로 겨울인 1월에서 3월까지 연탄 나눔에 나선다”며 “보통 설이 지나면 후원이 감소해 ‘연탄 보릿고개’라 불린다. 최근 이상기후가 심해지며 3월까지도 갑자기 추워지는 날이 많아 긴급 지원에 나서는 일도 잦아졌다”고 토로했다.

연탄은행은 1998년부터 전국 31개 지역에 사랑의 연탄나눔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약 52만명의 봉사자가 참여해 전국 48만 가구에 약 8000만장의 연탄을 나눴다.

연탄 1장당 무게는 3kg에 육박한다. 8개(약 24kg)를 한 번에 나르는 ‘슈퍼맨’도 나타났다. 박지영 기자.


이 마을 주민인 이영자(86) 씨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자식들도 다 멀리 있고, 나도 귀가 잘 안 들려서 어딜 나가기도 무섭다”며 “옛날엔 필요할 때마다 1장씩 사서 비탈길을 올라왔어야 했는데, 이렇게 연탄을 두둑히 쌓아주니 세상이 너무 좋아졌다”며 미소를 띄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는 약 300여가구가 연탄 난로를 쓴다. 한 번 난로를 피울 때마다 1장 또는 2장이 사용된다. 황영섭(75) 씨는 “겨울에는 연탄난로와 전기장판으로 버틴다”고 했다. 박지영 기자.


이 마을 통장이면서 40년 넘게 이곳에서 거주한 황영섭(75) 씨는 “여기 다 전세 500만~1000만원에 사는데, 보일러를 놓아달라고 집주인에게 요청을 해도 ‘그럼 나가라’고 한다”며 “대부분 독거노인들이고, 요새는 연탄장수도 없어 연탄이 떨어지면 추운 겨울을 전기장판으로 버텨야한다”며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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