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평균연령 75세 베테랑 미용사
커트 5000원, 파마 1만2000원 싼 가격에 인기
100세 맞은 어르신도 단골…2월도 이미 150명 예약
서울 영등포구 ‘사랑방 미용실’에서 어르신이 ‘파마’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박병국 기자 |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어떤 스타일도 가능합니다.”
지난 23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사랑방 미용실’. 안내를 받아 미용실 2층에 있는 대한노인회영등포구지회에서 쿠폰을 구매한 뒤, 순서를 기다렸다. “앉으세요.” 조은희(64) 원장의 말에 자리를 잡았다. 조 원장이 “어떻게 잘라드릴까요”라고 묻는다. “투블럭도 가능한가요?”라고 하자, “가능해요”라는 답이 즉각 돌아왔다. 슥삭슥삭, 능숙한 손길에 머리카락이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사랑방 미용실은’ 영등포구청의 어르신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다. 대한노인회영등포구지회가 관리하고 있다. 사업초기부터 자리를 지킨 조 원장과 어르신 직원 20명이 함께 사랑방 미용실을 꾸려가고 있다. 어르신 나이는 65세부터 85세까지로 평균 연령은 75세다. 직원 절반은 미용사 자격증이 있다. 나머지도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오전, 오후 어르신 2명이 1조가 돼 근무한다. 4시간씩 일주일에 한번이다. 어르신 직원이 받는 월급여는 24만원 수준, 용돈벌이는 된다.
미용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영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다.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전화, 방문 예약을 한 뒤, 2층 노인회 사무실에서 쿠폰을 사면 된다. 쿠폰은 커트, 염색, 파마 세 가지다. 다만 65세 이상만 미용실 이용이 가능하다. 기자는 취재 목적이라고 밝힌 뒤, 영등포 구청과 사랑방미용실, 대한노인회에 양해를 구하고 서비스를 이용했다.
가격은 커트 5000원, 염색 9000원, 파마 1만2000원이다. 일반 미용실에 비해 절반 가까이 싸다. 이런 이유로 지하철, 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단골 고객도 많다. “안오면 죽은 줄 알어”라고 웃으며 말하던 한 단골은 올해 100세를 맞고 최근 미용실을 다시 찾았다. 대한노인회영등포구지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용실 이용객만 2833명이다. 기자가 찾은 이날에도 12명이 이미 서비스를 받았다. 2월에는 이미 150여명이 예약을 마쳤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사랑방 미용실. 박병국 기자 |
가격이 싸다고 서비스의 질이 낮지는 않다. 미용자격증이 있는 직원들은 대부분 업계에서 4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어떤 스타일도 가능하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파마 재료나 염색 재료 역시 좋은 것으로만 씁니다”고 귀뜸했다.
“어르신이나 젊은 사람들이나 똑같아요. 다 예뻐지고 싶어해요.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잘라달라는 사람도 많답니다. 보통 파마나 염색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반 미용실에서 하는 스타일은 다 됩니다.” 조 원장의 말이다.
가격이 싼 탓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조 원장은 “70대라고 해서 한창 머리를 자르고 있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59세인 고객이 있었어요”며 “머리를 자르는 중간에 멈출 수 없어 다음부터는 오지 말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위기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일반 미용업계가 민원을 넣은 것이다. 원래 서비스 비용은 지금보다 더 저렴했다고 한다. 영등포 구청은 가격은 올리고 지원 예산은 줄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사이, 미용실 뒤 쪽에서 수다와 웃음소리가 왁자하다. 거울 너머로 큰 규모의 사랑방이 보인다. TV가 벽에 걸려 있고, 어르신들의 손길이 닿은 화분들이 가득하다. 염색을 하고 대기를 하고 있는 사람, 미용 서비스를 이미 받고 TV를 보는 사람, 사랑방에는 이야기 꽃이 피고 있었다. 영등포 선유도에서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 홍인순(75) 씨는 “나는 4년 가까이 단골”이라며 “가격이 싸기도 하지만, 여기가 머리를 잘해요. 같이 웃고 이야기 할 사람들이 있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조 원장도 “집에만 있으면 4시간(미용실에서 일하는 시간) 동안 누워 있는 경우가 많아요. 여기 오면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들이 있어요”라며“먹을걸 사들고 오는 어르신이 많아요. 오늘은 소시지 반찬에 밥을 싸서 온 손님도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20여분이 지났을가, 기자가 주문한 ‘투블럭’이 완성되고 있었다. 서비스 전, 대한노인회 관계자에게 “투블럭 진짜 괜찮을까요?”라는 불신 가득 했던 말이 무색해졌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사랑방 미용실은 어르신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일자리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안정된 소득을 창출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라며 “특히 단순히 이미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사회적 고립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교류할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커트 서비스를 받고 있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