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 AI칩 투심도 강력…트럼프發 추가 호재도 관심
단기 채권·가상자산·S&P500 ETF도 인기
[로이터, 게티이미지뱅크, 신동윤 기자 정리] |
[헤럴드경제=신동윤·김민지 기자] 2025년 을사년(乙巳年) 새해 서학개미(미국 주식 개인 소액 투자자)의 투심은 도널드 트럼프 2기 미 행정부의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미 행정효율부(DOGE) 수장을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글로벌 증시 랠리를 이끌었던 인공지능(AI) 관련주에 대한 서학개미의 사랑 온도도 여전히 뜨거웠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AI 패권’을 선언하고 나선 만큼 올해 역시도 AI가 서학개미의 ‘최선호주’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8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2일까지 서학개미 ‘원픽(최선호주)’은 4억1653만달러(약 5983억원) 규모의 순매수세를 기록한 테슬라였다.
테슬라에 이어 2위 자리엔 테슬라 주가를 정방향으로 2배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불 2배(DIREXION DAILY TSLA BULL 2X SHARES)’ 상장지수펀드(ETF)가 2억8127만달러(약 4040억원)로 자리 잡았다.
연초 서학개미들은 테슬라 선호 현상이 두드러졌던 데는 ‘저가 매수’를 통해 추가 상승장에서 차익을 거둘 것이란 기대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선 승리 ‘1등 공신’으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 수장을 맡는 등 실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점도 투심을 자극한 주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AFP] |
앞서 테슬라 주가는 지난해 12월 17일 종가 기준 479.86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정점을 찍기 전 3개월간 주가가 111.60%(226.78→479.86달러)나 올랐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주가 상승률만 살펴봤을 때도 주가 상승률은 90.84%(251.44→479.86달러)로 사실상 주가가 곱절로 뛰었다.
정점에 올랐던 주가는 보름 만인 지난 2일 379.28달러로 20.96%나 급락하는 조정장세를 겪었다. 증권가에선 이 같은 주가 하락세가 투자자들의 ‘저가 매수’ 심리를 자극했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공식 출범이 임박한 이달 들어 테슬라의 AI·슈퍼컴퓨터 관련 투자, 자율주행,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사업에 대한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졌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내놓은 ‘전기차 의무화 폐지’ 행정명령 등의 악재는 이미 주가에 선반영됐다”고 짚었다.
실제로 미 월가에선 테슬라 주가가 올해 상반기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선 우상향할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퍼샌들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테슬라 주식을 ‘매수 후 보유(Buy and Hold)’ 1순위 추천 종목으로 꼽았다. 이어 투자 등급을 ‘비중확대(overweight)’라고 재확인하면서 목표주가를 기존 315달러보다 58.73%(185달러)나 높은 50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알렉산더 포터 파이퍼샌들러 분석가는 “투자자들이 테슬라의 ‘현실 세계 AI(real-world A.I.)’ 잠재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면서 “지금부터 1년 후면 투자자들은 테슬라 신제품 출시 주기에 대한 더 분명한 정보를 갖고, 완전자율주행(FSD) 수행 능력 향상이나 AI 관련 야망에 대한 주제에 관심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FP] |
글로벌 AI 랠리를 이끌었던 AI칩 ‘대장주’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떠오른 브로드컴에 대해 서학개미의 순매수액은 9648만달러(약 1386억원)에 달했다. 순위도 3위까지 올랐다.
글로벌 AI 빅데이터 기업 팰런티어 테크놀로지도 7812만달러(약 1122억원) 규모의 순매수액을 기록하며 6위에 이름을 올렸다. 팰런티어를 이끄는 피터 틸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숨은 실세’로 불리는 인물로, 팰런티어 역시 ‘트럼프 수혜주’로 주목 받아왔다.
서학개미 |
순매수액 5948만달러(약 854억원)로 7위에 오른 서브 로보틱스도 있었다. 해당 기업은 작년 7월 엔비디아가 약 1200만달러(약 172억원) 투자해 지분 10%를 소유했단 소식이 알려진 자율주행 로봇 회사다. 투자 소식 알려진 작년 7월 19일부터 지난 22일 종가까지 주가는 577.57%(2.63→17.82달러)나 올랐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새해가 밝은 뒤에도 작년에 이어졌던 AI 투자 붐이 식지 않았단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며 “이미 ‘고평가’됐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엔비디아 대신 상대적으로 저평가 상태로 인해 주가가 추가 상승할 여력이 더 큰 종목으로 서학개미들이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같은 기간 엔비디아의 순매수액은 4085만달러(587억원)로 서학개미 순매수액 17위로 처졌다.
미국 새 행정부가 AI 투자에 총력을 다할 것이란 점을 임기 시작과 동시에 천명한 점은 AI 섹터엔 분명 호재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인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생성형 AI ‘챗(Chat)GPT’ 개발사인 오픈AI와 일본 소프트뱅크, 미국 오라클의 AI 합작회사 ‘스타게이트’ 설립을 직접 발표하면서 “우리는 이것(AI 기술과 인프라)을 미국에 두고 싶다”고 강조했다. 스타게이트를 통해 3개 회사는 미국 AI 산업에만 최소 5000억달러(약 718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첫 번째)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스타게이트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스타게이트 설립의 핵심 멤버인 샘 올트먼(오른쪽 첫번째부터)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연설을 듣고 있다. [AFP] |
이 밖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조 바이든 전 행정부 당시 만들어진 AI 규제를 폐기하도록 명령했고, 취임 전날엔 ‘AI 발전소’에 대한 투자를 쉽게 만들고 환경 규제도 줄이겠다고 하며 ‘친(親) AI’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서학개미 중에선 AI 반도체주가 조만간 조정장세를 겪을 것이라 보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미 대표 반도체 지수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를 3배 역방향 추종하는 ‘디렉시온 세미컨덕터 베어 3X ETF’에 대한 순매수액도 5639만달러(약 810억원)로 9위에 오르면서다.
서학개미들은 연초 변동성이 커진 금리 상황에 대비해 단기 국채·회사채에 투자하는 ETF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만기 3개월 이내 단기 국채에 분산투자 하는 ‘아이셰어스 0-3 먼스 트레저리 본드 ETF(SGOV)’와 만기 1년에서 3년 사이의 단기 회사채를 다루는 ‘뱅가드 숏 텀 코퍼레이트 본드 ETF(VCSH)’에 대한 서학개미의 순매수액은 각각 8604만달러(약 1236억원), 5841만달러(약 839억원)로 4·8위에 올랐다.
연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에 금리 인하 ‘속도 조절론’에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커진 데다, 미 국채 금리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금리 변화에 덜 민감하고 분배금까지 노릴 수 있는 상품(SGOV)에 대한 서학개미의 투심이 쏠린 것이다.
자칭 ‘가상자산 대통령’이라고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에 대비해 가상자산 관련주에 투자하는 ETF에 대한 선호 현상도 뚜렷했다. 미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 주식에 커버드콜 전략을 더해 월배당금을 지급하는 ‘일드맥스 코인 옵션 인컴 스트래티지 ETF(CONY)’에 대한 순매수액도 5635만달러(약 809억원)로 10위까지 올랐다.
이 밖에도 연초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전 조정세를 보였던 미 증시 주요 지수가 장기 우상향하는 것이란 기대 속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추종하는 ‘뱅가드 SP 500 ETF’도 순매수액이 8133만달러(약 1168억원)로 5위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