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수십억 빚더미 충격…찬밥신세 다문화 학교 [무국적 금쪽이]

2억 떨어진 지구촌학교 후원금…후원자도 감소
처음으로 후원보다 지출 많아져 “빚 내서 운영”


서울 구로구 소재 지구촌학교 복도의 벽이 갈라져 있다. 박혜원 기자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빽빽한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운동장 없는 학교가 하나 있다. 12년 전 설립된 다문화 대안학교, ‘지구촌학교’다. 한국이 다문화 국가에 가까워지는 동안 이곳 전교생도 3배 가까이 늘었다.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국적이 없거나 집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금쪽이’가 된다. 외국인 노동자 시대, 청소년 세대에 드리운 그늘이다. 이같은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 헤럴드경제는 두 편에 걸쳐 지구촌학교 학생들과 학교 각각의 이야기를 싣는다.


[헤럴드경제=박혜원·안효정 기자] 이주 배경 청소년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모이던 학교들 재정도 흔들리고 있다. 지역 곳곳에 설립된 학교들마다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밀려 있지만 정작 교육 환경은 매년 열악해지고 있다.

1년새 후원금 2억 줄어…전기·가스도 빠듯


지난해 지구촌학교는 1억원이 넘는 적자가 났다. 서울 소재 다문화 대안학교 지구촌학교는 개인 및 단체 후원금만으로 운영되며 학생들에게 교육비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설립 10년이 넘은 지난해 처음으로 후원보다 지출이 많아졌다.

지난해 지구촌학교가 학교 운영에 지출한 돈은 3억5357만원. 반면 후원금은 2억4738만원에 그쳤다. 개인후원에 참여한 사람만 300명이 넘을 정도로 이 학교 후원은 활발한 편이다. 그럼에도 운영비를 충당하지 못했다.

재작년과 비교하면 재정이 확연히 열악해졌다. 재작년 총 후원금은 4억2840만원, 총 지출은 2억7706만원으로 후원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1년 사이 후원금은 2억원 가까이 줄고, 지출은 7600만원가량 늘었다.

지출 항목별로 보면 공공요금이 특히 많이 늘었다. 지난해 지구촌학교가 지출한 전기요금은 3326만원, 가스요금은 734만원, 수도요금은 1114만원이다. 전년 대비 전기요금은 846만원, 가스와 수도요금이 각각 304만원 늘었다. 이밖에도 지난해에는 교원 퇴직금 4195만원, 통신비 259만원, 후원자 관리비 263만원 등이 들었다.

올해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 건강검진 비용이었는데, 인근 병원 지원을 받아 가까스로 마쳤다. 박지혜 지구촌학교 교감은 “공공요금은 줄일 수도 없어 난처한 상황이라 작년은 빚을 내 버텼다”고 말했다.

여기도 ‘콩나물 교실’


지구촌학교는 복도를 도서관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혜원 기자


이런 상황에서 다른 교육 여건까지 살필 여력은 없다는 게 학교의 호소다. 올해 기준 지구촌학교 전교생은 초·중·고등학생을 합쳐 총 277명으로, 과밀학급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4개층 건물을 한층은 급식실로, 나머지는 교실로 쓰고 있어 한층마다 100명씩 이용하는 셈이다. 화장실도 한 개뿐이라 쉬는 시간마다 끝없이 줄이 이어진다.

교실로 쓰기에도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도서관에 들어갈 책은 복도를 가득 채워 쌓여 있다. 건물 곳곳 벽은 부서지거나 금이 가 있다. 입학생이 늘면서 창고로 쓰던 공간까지 교실로 조성했는데 냉·난방기기를 아직 들여놓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박 교감을 제외하고는 전부 기간제라, 대부분이 짧게 머무르다 떠난다.

교육청들은 대개 이처럼 재정이 열악한 학교를 위한 지원금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대안학교의 경우 지원이 일반학교의 절반에 그친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학생 수와 학급 수, 건물 면적 등을 고려해 운영비를 산정해 이런 학교들에 지원금을 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안학교는 ‘대안학교 보정지수(58%)’가 적용된다.

예산 부족에 학급은 1개…선생님도 1명


[챗GPT를 이용해 제작]


때문에 지구촌 학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늘 ‘예산 부족’에 시달린다. 교육청의 재정적 도움을 받더라도 학교가 늘어나는 학생 수요를 따라가거나 다문화 학생의 특성에 맞는 지원책을 공급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다문화 학생들을 위탁받는 A학교에서는 중학교 1~3학년 학생 총 15명이 한 학급에서 한 명의 선생님으로부터 수업을 받는다. 인원은 적지만 학생마다 나이, 한국어 수준, 이해력 등이 천차만별이라 ‘1학급 1교사 체제’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지도 교사를 늘리거나 분반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A학교 관계자는 “아이들 모두가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교사 혼자서 중학교 교육 과정 전체를 가르치고 성적 처리까지 맡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마음 같아선 아이들의 학습 수준에 맞춰 수업을 해주고 싶어도 그럴만한 예산이 충분치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교장 개인 대출금만 수십억대


고양시다문화대안학교도 예산의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학생 교육 관련 예산을 지원받고 있지만, 학생들을 관리하거나 상담해줄 교사가 없어 학교는 별도의 비용을 자체적으로 마련 중이다. 또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 한국역사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할 만한 예산이 없어 학교 관리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지역사회 연계사업을 알아보거나 자부담 처리하고 있다.

김세영 교장은 “중도입국 학생이나 다문화 학생들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생활, 진로·진학 등을 밀착 지원받아야 학교와 사회에 보다 수월하게 적응해나갈 수 있다”면서 “교육청과 지자체가 이러한 것들까지 도움을 주진 않고 있어 아이들을 책임져야하는 학교 입장에선 재정적 어려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전교생이 고려인으로 구성된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역시 예산 문제로 수년째 골머리를 앓고 있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는 현재의 예산으론 전교생 50여명의 생활 및 학습을 지원해줄 수 없어 매년 지자체나 기업에서 여는 한국어 수업, 진로탐색 등의 공모사업에 응모한다. 이마저도 떨어질 수 있어 소학섭 교장이 개인 대출받은 돈만 수십억원대에 달한다. 공모사업과 대출로 어렵게 마련된 학교 재원은 학생들의 독감 예방 주사비용부터 체험학습, 검정고시 지원, 시설 운영 등에 쓰인다.

소 교장은 “교육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공모사업 응모 결과에 따라 학사 운영이 좌우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나도 사명감으로 빚을 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가끔 이렇게까지 하는 나를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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