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수 줄며 비었던 교실, 지역 거점 늘봄학교로
학생 맞춤 프로그램으로 사교육비 경감, 돌봄 효과
경기 성남시 오리초등학교에서는 인근 학교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늘봄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골프 교실에서 스윙을 하고 있는 수업 참여 초등학생의 모습. 김용재 기자 |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집에 혼자 있을 시간에 뮤지컬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학령인구가 줄어든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가 변화를 꾀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오리초등학교 5층 뮤지컬 수업실에서는 음계를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는 10여명의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늘봄공유학교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해당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옆 교실에서는 남자아이들 20여명이 모여 ‘프라모델’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학교 건물을 개조한 ‘골프 수업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퍼팅, 스윙을 연습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대부분 오리초등학교 재학생이 아니다. 오리초등학교는 학령인구 감소로 늘어난 빈 교실을 주변 학생들에게 개방해 지역 거점형 늘봄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5층 건물의 경우 교실이 40여개에 달하지만, 교실이 텅 빈 채 오랜 기간 사용되지 않았다.
늘봄공유학교가 운영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학교 시설은 리모델링이 진행됐고 학부모 대기실도 생겼다. 오리초의 전교생 수는 100여명에 불과하지만,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이는 주변 26개 학교, 260여명에 달한다.
김기범 오리초 교장은 “학생 수가 급감하며 골프 연습장까지 만들었다가 수업을 폐강했는데, 거점형 늘봄학교가 돼 다른 학교 학생들도 수업을 들으러 오면서 최고 인기 강좌가 됐다”라며 “다른 학교 학생들과 자연스레 접촉하는 기회가 늘어서 학생들이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오리초등학교에서 늘봄프로그램 일환으로 뮤지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10여명의 학생들이 ‘아아아’ 소리를 내며 뮤지컬 발성을 연습하고 있는 모습. 김용재 기자 |
뮤지컬 수업에 지난해부터 참여하고 있다는 불정초등학교 김서은(10) 양은 “처음에는 다른 학교로 오는 것이 낯설었는데, 계속 다니다 보니 친구들도 많아지고 자신감도 생겼다”라며 “엄마, 아빠 둘다 일을 하셔서 집에 5시까지 혼자 있어야 하는데 늘봄초등학교에 와서 빈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주변 26개 학교에서 학생들이 모이는 만큼 셔틀버스도 지원한다.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끝나고 난 뒤 오후 7시 30분까지 방과후 돌봄이 가능하다.
오리초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학부모 가소영 씨는 “사교육에서는 아이들이 원하는 마술이나 웹툰 프로그램을 찾을 수 없다 보니 이곳을 찾았다”라며 “통학버스로 아이들을 데리러 와주고, 프로그램 수업이 끝나면 귀가하는데 학교 울타리 안이다 보니 안전하다는 느낌도 받는다”라고 말했다.
늘봄학교는 기존의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이 통합된 형태로 자녀가 최장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과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늘봄학교에 참여한 초1 학생은 총 29만6000명이다. 이는 전체 초1 학생 중 83.4%에 달하는 규모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생들이 ‘학원 뺑뺑이’를 도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를 돌봐줄 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그런 학생들에겐 국·영·수 학원을 보내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수업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