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후에도 잔학행위 지속…“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북적book적]

키스 로 신간 ‘야만 대륙’
2차대전 이후 내전·인종 청소…중동·우크라이나 전쟁도


‘야만 대륙’ 표지.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당신의 적이 누구지?” 전후 불가리아의 공산당 의용대장은 빵을 사는 줄에 새치기를 한 공산당 간부에게 항의했다가 체포된 일반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일반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정말로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떤 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의용대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적도 없다니, 도대체 당신은 어떤 종류의 인간이지? 당신은 분명 우리의 젊은 세대에 속하지 않아. 당신은 우리의 시민이 될 수 없다고. 당신에게 적이 없다면, 그리고 정말로 미워할 줄 모른다면, 우리가 당신에게 가르쳐주겠어! 아주 빠르게 교육해주겠다고!”

1945년 5월 7일 나치 독일이 항복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하지만 키스 로의 신간 ‘야만 대륙(Savage Continent)’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전시뿐 아니라 전후에도 인류가 ‘짐승’ 노릇을 계속했다는 것을 유럽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만행을 통해 고발한다. 세계대전 종결이 오히려 “또 다른 잔학 행위의 기점”이 됐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유럽 구대륙을 파괴한 것이라면, 전후의 혼돈은 신유럽을 형성했다. 유럽 사람들은 상실과 부당한 상황을 견뎌야 했고, 정치적 혼란과 강대국의 침략에 노출되는 가운데 적으로 상정한 대상을 증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폭력과 복수로로 가득한 시기에 유럽인들에겐 희망, 포부와 함께 편견과 원한이 생겨났다.

히틀러의 패배 이후에도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폴란드에서는 수년간 내전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복수는 주로 ‘그릇된 신(가톨릭교, 그리스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가 섬기는 신)을 숭배하거나 신을 믿지 않는 자‘, ‘잘못된 인종이나 국적에 속한 자’에 집중됐다.

1945~1947년에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광범위한 인종 청소가 자행됐다.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과 구소련에서 ‘민족 정화’를 이유로 수천만 명을 자국에서 추방했다.

저자는 전후에도 오랫동안 야만성이 지속된 이유는 연합군과 추축국 사이의 대충돌 뒤에 개별 국가·지역마다 다른 목적과 동기를 가진 인종·민족·계급·이념·영토·종교 차이에 의한 국지적 갈등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2차 세계대전 직후기가 인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 중 하나며 현 유럽과 세계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기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현재 중동과 동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또한 근본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과 그 전후기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분쟁의 화약고(발칸반도, 팔레스타인, 한국, 대만 등)’와 새로운 동서 진영 구도(서구와 비서구의 신냉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무엇보다 내가 전하고 싶은 하나의 보편적인 진실은 전쟁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폐허는 크면 클수록 재건하기 어려워진다. 결코 경솔하게 전쟁을 지지하지 말라”는 저자의 말은 여전히 전쟁이 진행 중인 현 상황에 귀 기울일 만한 조언이다.

야만 대륙/키스 로 지음·노만수 옮김/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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