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가사집·‘보통의 존재’ 특별판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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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작가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김영사 서울사무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출판시장 불황에도 작품을 냈다 하면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르지만 정작 자신은 팬이 없다는 작가. 타고난 작가가 아니지만 그냥 묵묵히 쓴다는 사람. 최근 서울 종로구 김영사 서울사무소에서 헤럴드경제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이석원은 자신이 평범하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사실 그가 걸어 온 길은 결코 평범치 않다.
1995년 밴드 ‘언니네 이발관’으로 등장해 한국 인디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쓰고, 2009년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부터 최근 ‘슬픔의 모양’까지 꾸준히 책을 내고 있는 그는 음악계와 문학계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보기 드문 창작자다. 2017년 돌연 가요계 은퇴를 선언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올해는 데뷔 30주년 기념 책과 곡을 준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이석원은 작가가 된 후 15년 동안 에세이 8권, 소설 1권, 공저 에세이 1권 등 총 10권의 책을 냈다. “글쓰기는 숨쉬는 일과 같다”는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쓰고, 밴드 활동을 하던 1999년에는 온라인상에 처음으로 공개 일기를 쓰기도 했다. 음반 작업 이상으로 글쓰기에도 천착한 셈이다.
책을 내게 된 것은 작가가 돼야 겠다는 목표 때문이라기 보다 쓰기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 그래서일까. 이석원의 글은 솔직하고 담백하다. 심각한 내용도 너무 무겁지 않게, 생기 있으나 얄팍하지 않은 문체로 풀어낸다. 이는 문재(文才) 뿐 아니라 작가로서 프로 의식이 작용한 결과물이다.
최근 작품의 중심이 나에서 타인이나 관계로 옮겨가 세계가 확장된 것은 끊임없는 자성의 발로다. 최근작 ‘슬픔의 모양’에서는 그동안 언급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전면에 등장하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조명됐다. 그는 “에세이스트는 기본적으로 자기 얘기를 쓰는데, 15년 동안 내 얘기는 너무 많이 썼다”며 “이전에 안 쓴 얘기를 써야 하니 계속 시선을 넓힐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순간을 믿어요’에서는 사실에 기반한 에세이지만, 소설처럼 상상의 여지를 남겨 둔 이야기 산문이다. “에세이는 문학적 틀이 너무 명확한 장르기 때문에 가능한 한 계속 벗어나고 싶고, 경계에 서고 싶었다”는 그는 열린 결말에 대한 진실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에세이라는 틀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변주를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석원은 올해도 2권의 책을 준비 중이다. 상반기에는 ‘보통의 존재’ 15주년을 맞아 작가의 코멘터리와 유튜버 겸 배우 문상훈과 주고 받은 서간문을 더한 특별판을 낸다. 하반기엔 가사에 대한 에피소드와 새로 쓴 가사를 담은 가사집을 낼 예정이다. 특히 가사집의 일부 가사는 멜로디를 붙여 한두 곡 만들 계획이다. 가수 활동을 할 때는 곡을 우선 쓰고, 가사는 마지못해 마지막에 썼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작업을 진행한 셈이다.
8년 만에 음악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이석원은 “지난해에 아버지가 편찮으신걸 보고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자각하게 됐다”며 “과거란 무엇인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옛날 생각을 하다 보니 30년 전 일들을 그대로 리플레이해 보는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글이나 음악은 직장인처럼 은퇴 시기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향후 20~30년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다. 창작은 단순한 밥벌이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단지 기술자가 될까 두려워서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 왔지만 여전히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유는 ‘신뢰받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서다.
“창작자가 들을 수 있는 최대의 찬사는 그 사람이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 같다. 한 권이라도, 한 곡이라도 더 세상에 내 주고 갔으면 좋겠는 거다. 이번에 책을 내고 몇몇 분들이 ‘이석원이 가능한 한 오래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