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딥시크” 가뜩이나 골치 아픈데…中 ‘가성비 AI’, 삼성·SK 살릴 구원자 또는 파괴자?[김민지의 칩만사!]

딥시크, AI 시장 판도 바꿀 ‘트리거’
성능·비용 둘러싸고 갑론을박도
중장기적 엔비디아 주도 굳건하다지만…
HBM 업계 ‘복잡셈법’에 기름부어


중국발 딥시크 쇼크가 AI 업계를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흑백요리사에서 화제가 된 최강록 세프의 유행어 “나야, 들기름”처럼 혜성같이 등장한 딥시크. 삼성, SK 등 한국 HBM 업계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김민지의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논란의 딥시크(Deepseek), 넌 도대체 뭐니?”

가뜩이나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반도체 시장에 중국 AI 모델인 ‘딥시크’가 기름을 부었습니다. 오픈AI의 최소 20분의 1 가격으로 동일한 성능을 구현했다는 딥시크의 주장에 실리콘밸리 전체가 충격에 빠졌죠. 딥시크는 단순한 ‘가성비’ AI가 아니라 AI 시장의 흐름을 바꿀 ‘트리거’로 꼽힙니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HBM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딥시크는 위기에 빠진 삼성전자를 구해줄 구원자일까요, 아니면 고성능 HBM 시장 수요를 말려버릴 파괴자일까요? 오늘 칩만사에서 살펴보겠습니다.

AI업계 ‘경종’ 울린 딥시크
진위 여부 둘러싸고 갑론을박도


딥시크는 지난해 12월 대규모언어모델(LLM) V3을 공개했습니다. 딥시크에 따르면, V3 개발 비용은 557만6000달러(78억8000만원)에 불과합니다. 이는 오픈AI가 최신 챗GPT에 투자한 비용 1억달러(1438억원)의 20분의 1 수준이고, 메타의 라마 3 개발비와 비교해도 10분의 1 정도입니다.

지난 20일에는 추론 모델 ‘R1’을 선보였습니다. ‘R1’ 개발에 투자된 비용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픈AI가 지난해 9월 출시한 추론 AI 모델 ‘o1’ 보다 일부 테스트에서 높은 성능을 보였습니다. 미국 수학경시대회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R1은 79.8%의 정확도를, o1은 79.2%의 정확도를 기록했습니다. 코딩 테스트에서의 정확도는 R1이 65.9%, o1이 63.4%였습니다.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로이터]


가격의 차이를 가른건 탑재된 그래픽처리장치(GPU) 입니다.

딥시크는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인 H800을 사용했습니다. 고성능 버전인 H100 보다 가격이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 제품이죠. 오픈AI는 AI 서비스 개발에 1만6000개 가량의 반도체 칩을 썼는데, 딥시크는 8분의 1 수준인 2048개의 칩을 썼다고 합니다.

사용한 반도체 칩 개수도 훨씬 적고, AI 가속기 성능도 훨씬 낮은데 도대체 딥시크는 어떻게 비슷한 성능을 구현할 걸까요?

업계에서는 딥시크가 알고리즘과 코딩 최적화, 그리고 오픈소스를 활용해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대신 잇몸’ 전략으로 하드웨어의 약점을 소프트웨어로 이겨낸 것이죠.

물론, 딥시크에 대한 갑론을박도 상당합니다.

딥시크가 V3 개발 비용만 공개하고 R1의 개발 비용은 공개하지 않은 점, 오픈AI의 데이터를 도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점 등 중국의 AI 기술력에 대한 의구심이 높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딥시크가 엔비디아 H100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며, 과연 진짜로 저가인 H800을 활용해 AI를 개발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 [로이터]


한 가지 분명한 건, 딥시크가 쏘아올린 ‘저비용 AI’의 가능성이 지금까지의 AI 시장 경쟁 양상을 바꿀 것이란 점입니다. 그간 북미 빅테크 업체들은 값비싼 엔비디아의 GPU를 싹쓸이 하며 ‘쩐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AI에게 ‘돈 먹는 하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죠.

그러나 딥시크가 ‘가성비 AI’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만큼, AI 시장에서의 자본 투자 경쟁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다소 옮겨올 것으로 보입니다.

HBM에 미칠 영향 당분간 두고 봐야
“중장기적 엔비디아 주도는 여전”


그럼 한국 투자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HBM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이제부터 이야기가 좀 복잡해집니다.

우선 일각에서 제기된 엔비디아 위기론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고 업계에서는 입모아 말합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엔비디아 주도의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죠. 결국 AI 서비스에서는 대중화가 핵심인데, 딥시크가 앞으로 얼마만큼 인기를 끌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요.

앞서 AI 시장의 ‘쩐의 전쟁’ 양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AI 시장 전체의 투자 규모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러 추론 AI 모델의 발전과 경량화에 대한 니즈가 커지면서 새로운 AI 시장을 창출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전문가들은 추론 AI 역시 많은 양의 HBM을 필요로 하는 만큼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에게 큰 리스크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최신형 HBM 보다 덜 주목받았던 구형 HBM이나 GDDR(그래픽메모리)나 LPDDR(저전력메모리) 등 새로운 제품이 부상할 여지도 생긴 셈이죠.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게티이미지]


이런 맥락에서 딥시크로 인한 추론 AI 시장의 확대는 HBM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에게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중국에 납품하는 저가형 AI 가속기인 H20에 탑재되는 HBM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엔비디아는 저전력 관점에서 LPDDR 및 GDDR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삼성전자가 막대한 생산능력(캐파)을 앞세워 HBM 외 틈새 시장을 노릴 수 있습니다.

다만, 변수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입니다. 중국의 AI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추기 위해 온갖 애를 써왔던 미국 정부에게 딥시크는 그야말로 ‘쇼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딥시크의 성능이 공개되자 미국 상무부는 즉각적으로 딥시크가 중국 수출이 금지된 미국산 반도체를 사용하는지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지금은 합법적으로 수출되고 있는 엔비디아의 저사양 칩인 H20과 H800에 대한 대중 수출 추가 제재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 정부의 추가 규제가 실현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로서는 저가 HBM을 판매할 거대한 시장을 잃는 셈입니다. 이미 미국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HBM에 미국의 원천 기술이 사용됐다는 것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이 중국에 HBM을 판매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까지 막히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중국 시장에 HBM을 파는 것은 불법인 셈이죠.

어쨌든 삼성이나 SK로서는 딥시크의 등장으로 머리가 더욱 복잡해지게 됐습니다. AI 시장은 정말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데,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친 거죠.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축해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해보입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