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대법원 상고 지양해야”
![]()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일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1심에 이어 2심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사실상 일단락됐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던 결과”라며 “대법원에 상고해도 판단이 바뀔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상고는 지양해야 할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검찰 또한 상당한 부담감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 백강진 김선희 이인수)는 지난 3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배임 등 19개 혐의를 받은 이 회장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추측이나 시나리오, 가정에 의해 형사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이 회장의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본격 겨냥한 때는 201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은 삼성바이로직스·삼성물산 등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을 펼치며 이 회장을 2차례나 조사했다. 2020년 6월엔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으나 결과는 기각이었다. 법원은 구속 필요성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법원에서 제동을 걸었음에도 검찰은 오히려 강수를 뒀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 중단·불기소 권고를 따르지 않은 채 2020년 9월 기소를 강행했다. 물론 수심위 결정은 권고적 효력이라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이때까지 검찰은 제도 시행 후 8차례의 수심위 권고를 모두 따랐었다.
무리한 기소의 결과는 1·2심 모든 혐의가 무죄라는 역풍으로 돌아왔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에게 유리한 조건이 되도록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고의로 부풀렸다고 봤다. 이 사건을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목적이 ‘경영상 판단’이라고 판단했다. 합병 방법에 대해서도 시세 조종이 있거나, 사기적 부정거래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법원은 오히려 검찰 수사가 위법했다고 지적했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며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1·2심에서 무죄가 나오긴 했지만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덜어낼 때까진 기소 후 무려 4년 5개월이 걸렸다. 이 기간 이 회장은 1·2심 재판을 합쳐 102차례나 피고인석에 앉아 하루 종일 재판을 치러야 했다. 매주 1회씩 열리는 재판 일정으로 인해 장기간 해외 출장도 불가능했다.
2심 선고 이후 검찰은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 상고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검 예규로 제정된 형사상고심의위원회 운영지침에 따르면 1·2심에서 모든 혐의에 무죄가 선고된 경우 상고심의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적어도 상고는 검찰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취지다.
위원회는 검찰 외부 변호사, 교수, 법학자 등으로 구성된다. 검사는 위원회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나 수사심의원회의 권고와 마찬가지로 강제력은 없다.
만약 검찰이 상고를 강행하더라도, 유죄 취지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적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대법원은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법리적인 문제만 살펴보기 때문이다. 3심 제도에서 사실관계를 따지는 건 항소심(2심)이 마지막이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서만 살핀다.
더욱이 이 사건의 핵심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목적과 방법 등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 핵심이었다. 법리적으로 복잡한 사안은 아닌 만큼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판단이 뒤집힐 가능성은 작다. 단순 통계를 봐도 지난 2023년 1년간 대법원이 2심 형사 판결을 뒤집은 비율은 5.8%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