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 김선희 이인수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며,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원심과 같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 승계 의혹이 1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합병은 양사의 미래 전략이었으며 삼성바이오로직스(로직스)의 회계 조작도 없었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검찰이 2020년 9월 1일 물산-모직 합병이 삼성그룹 차원에서 저질러진 ‘불법’이라며 기소한 지 1617일만이다.
이 회장 항소심을 심리한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 백강진·김선희·이인수)는 지난 3일 피고인 전원에 대해 ‘전부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로직스) 회계 처리가 오로지 ‘이 회장’만을 위해 벌어진 일이라는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70개의 세부 쟁점 중 법원이 가장 먼저 판단한 것은 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압수수색으로 얻어진 디지털 증거들이었다. 1심에서 해당 증거들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증거 능력을 상실하자, 검찰은 항소심에서 2000개의 추가 자료를 제출했다. 삼성 측 관계자의 노트북에서 찾은 같은 내용의 자료들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동일했다. 18TB(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로직스의 백업서버, 에피스의 NAS(네트워크결합스토리지) 서버를 적법하게 추려내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봤다. 사건과 관계없는 증거들까지 ‘무제한’으로 수집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변호인이 (당시)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검사는 (재판에서) 적법성을 확보했다고 증명할 책임을 진다”며 “추가 제출된 증거 또한 (당사자의) 실질적 참여권이 보장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물산-모직 합병 ‘주체’는 양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검찰은 이 회장의 그룹 승계를 위해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이 주도해 삼성물산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합병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미전실이 작성한 ‘프로젝트G’, ‘M사 합병 추진안’ 등 문건은 사전 검토 수준이고, 실제 결정은 물산-모직 경영진들이 주체적으로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물산·모직의) 문건이나 증거를 형식적인 사후 작업으로 폄하하기 어렵다”며 “(양사의) 사외이사들 또한 거수기가 아니라 찬성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물산 합병 TF와 미전실이 일방적으로 지휘·지시되는 관계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룹 전체를 조율하는 미전실이 관계자의 보고를 취합해 합병 일자를 정하고 최종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부당한가 하는 의문도 든다”고도 지적했다. 최 전 실장이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강조한 “미전실은 잠재적 위험을 점검하고 대책을 모색해 미래 방향을 논의하는 조직”이라는 설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항소심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삼바 분식회계 논란에 대해서도 법원은 1심과 동일하게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 회장이었지만, 삼바 관련 부분에서는 크게 한숨을 들이마시는 등 긴장한 기색을 역력하게 내비쳤다.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이 관련 사건에서 이 회장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분식 회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거짓 정보가 아닌 ‘진실된 정보’를 재무제표에 적었기 때문에 이를 위법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다. 더 나아가 ‘적절한 회계 처리’였다고까지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은 로직스의 ‘의도’를 문제 삼았다. 바이오젠에 부여한 콜옵션이 부채로 인식될 경우 에피스가 ‘자본잠식’에 빠지게 되는데, 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에피스를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사업에 성공 중인 에피스가 (회계적으로) 자본잠식에 빠진다는 것은 미스매치다.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지 않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 노력이 거짓 회계 처리인지 의문”이라며 “결과적으로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게 된 회계처리”라고 했다. 당시 에피스는 복제약 생산 및 판매 허가를 받는데 성공하며 사업 성과가 가시화되던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