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친화 정책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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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일대 농경지에서 먹이 활동 중인 겨울 철새떼. |
[헤럴드경제(순천)=박대성 기자] 전라남도 순천시의 철새 친화적인 행정 덕택에 흑두루미를 불과 20m 앞에서 탐조할 수 있게 됐다.
순천만 일대는 철새 개체수 증가 뿐만 아니라 탐조거리도 10여년 전 700m에서 점차 짧아져 500m, 300m, 80m에서 최근에는 20m로 가까워졌다.
순천시에서는 그동안 ▲순천만 인근 환경저해시설 철거 ▲흑두루미 전선 충돌 사고 예방을 위한 전봇대 282개 철거 ▲흑두루미 영농단 구성 및 친환경 농업 추진 ▲철새 보호를 위한 서식지 갈대 울타리 조성 등의 조치를 시행해 왔다.
그 결과 순천만의 자연성이 점차 회복되면서 흑두루미 개체수가 급증했다.
2006년 167마리에서 2008년 344마리, 2015년 1410마리, 2024년에는 7606마리로 증가하며, 순천만은 전 세계 흑두루미 개체수의 절반이 월동하는 주요 서식지가 되었다.
이는 순천만 습지 복원을 통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철학의 성과로, 순천만이 멸종위기 겨울 철새 탐조 성지로 자리 잡는데 기여하고 있다.
시에서는 국가정원과 순천만 사이 농경지 35ha 매입해 순천만습지와 도심을 잇는 거대한 생태 축을 조성해 순천만의 원시성을 도심 안쪽으로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흑두루미는 천연기념물 228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절멸 가능성’이 높은 ‘취약’(VU) 등급으로 지정돼 있다.
겨울 철새 흑두루미는 갯벌과 친숙한 두루미로 ‘갯두루미’로도 불린다.
갯벌에서 잠을 자고 주변 농경지에서 볍씨, 우렁이 등을 먹으며 동절기를 나지만, 국내 서식지가 개발되면서 개체수가 급감했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마지막 남아 있는 흑두루미 월동지인 순천만도 식당, 펜션 난립과 무분별한 낚싯배 운항, 주변 농경지 출입으로 인해 위협을 받았다. 이러한 서식지 훼손으로 인해 흑두루미는 한국을 떠나 일본 규슈 이즈미로 몰려 들었다.
2006년 당시 순천만 흑두루미는 167마리였고 당시 관광객도 연간 13만 명에 불과해 관광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노관규 시장은 이 땅의 주인이었던 생명들을 본래의 터전인 순천만으로 불러오는 것이 인간도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철학으로, 순천만 습지 복원을 통한 원시적인 생태관광지 조성을 추진했다.
이런 행정 성과가 도드라지면서 국제두루미재단 임원들이 순천시의 생태철학과 순천만의 보전 사례를 전 세계적으로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지난 달 순천을 직접 방문해 이를 확인했다.
오는 5월에는 세계습지의 날과 세계철새의 날을 기념해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파트너십(EAAFP)과 국제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11월에는 순천만 흑두루미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순천이 보유한 멸종위기종 서식지 복원 사례를 전 세계에 공유할 계획이다.
노관규 시장은 “순천만에는 흑두루미,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흰기러기 등 국내 희귀 멸종위기 겨울 철새들의 낙원이 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이러한 생태철학을 공유하고, 생태 가치를 기반으로 문화와 경제를 융합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