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부터 영업 현장까지 부당대출 만연…3145억 추가적발

금감원 “금융사고, 은행권 고착화
단기성과주의 반성, 개선 모색을”
우리·KB CET1 0.2%P 하락 가능성



금융감독원이 4일 발표한 주요 지주·은행에 대한 정기검사 결과에서 주목한 것은 고위 임직원부터 영업 현장까지 은행 전반에서 부당대출이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이번 검사로 우리·KB국민·NH농협 등 3개 은행에서만 임직원 연루 부당대출이 3000억원 이상 적발됐지만 다른 은행에서도 금융사고가 진행 중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급증한 부당대출 금융사고가 특정 회사에 국한되지 않은 은행권 전반의 고질적 문제라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금융사고 예방 실패 원인을 구조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금융권 전반에 공유해 금융권 모두가 스스로 점검하고 쇄신하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은행권의 낙후된 지배구조와 대규모 금융사고 등 심각한 내부통제 부실이 재차 확인됐다”면서도 “그간 누적된 문제를 특정 은행이나 특정 금융권의 문제로 한정해볼 것이 아니라 전체 은행권, 금융권의 외형 팽창 과정에서 단기성과주의 등에 대해 반성적으로 고찰하고 고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개선방향을 모색해보자”고 밝혔다.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이번 정기검사에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을 제외하고도 우리·국민·농협은행이 총 3145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을 취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 임직원이 브로커 등과 공모해 부당대출을 내주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먼저 우리은행의 전현직 고위 임직원이 얽힌 부당대출 적발 규모는 1604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 중 987억원이 현 임종룡 회장 체제에서 취급됐다. 고급 레지던스 취득 등 사업목적과 무관한 기업대출을 승인하거나 투자자 날인이 없는 투자계약서를 활용하는 등의 사례가 포착됐다. 한 지점장은 브로커를 통해 여신 3건, 총 17억8000만원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3800만원을 수수한 정황이 확인되기도 했다.

국민은행에서는 팀장이 시행사·브로커의 작업대출에 조력해 허위 매매계약서 등 관련 서류를 받아 대출이 가능한 허위 차주를 선별하고 대출이 쉬운 업종으로 변경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부당대출 892억원을 취급하고 일부 대출에 대해 금품·향응을 받은 정황을 확인했다. 대출 취급 시 징구한 임대차계약서가 허위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음에도 추가 확인 없이 대출을 취급한 사례도 있었다.

농협은행의 경우 지점장·팀장이 브로커·차주와 공모해 허위 매매계약서를 근거로 감정평가액을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부당대출 649억원을 취급했다. 일부 대출에 대해 차주 등으로부터 금품 1억3000만원을 수수한 정황도 파악됐다. 또한 운전자금은 대출실행 3개월 내 점검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살피지 않아 총 226억원의 대출금이 용도외로 유용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금감원은 지적했다.

이번 검사 결과에는 부당대출 사고를 포함해 우리금융지주의 업무행태에 대한 지적이 다수 포함됐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손 전 회장의 행장 재임 시절 여신 관련 징계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현재까지 방치해 사고자 상당수가 견책 이하의 경징계를 받는 데 그치는 등 온정적 징계를 해 왔다고 꼬집었다. 중과실 사고에서 다른 은행은 귀책금액이 2억원 이상인 사고자에 대해 감봉 이상의 징계를 내렸는데 우리은행에서는 10억~20억원의 손실을 내고도 견책에 그쳤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또한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혐의를 인지하고도 이를 금융당국에 5개월간 보고하지 않아 금감원 검사와 검찰 수사가 지연됐다고도 지적했다.

동양·ABL생명 인수·합병(M&A) 과정에서도 의사결정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봤다. 우리금융은 리스크관리위원회 심의가 열리기 전에도 M&A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하기로 결정해 리스크관리위의 심의 내용이 안건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우리은행에는 파생상품 딜러가 평가데이터를 왜곡해 약 1000억원 규모의 손실누적액을 2년간 숨긴 혐의가 있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금감원은 이번 정기검사를 통해 건전성·리스크관리를 경시하는 조직문화도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최고경영자(CEO)가 재임 중 자회사 인수나 해외 진출 등 외형 확대 중심의 과도한 경영목표를 제시하고 임직원은 여기에 매몰돼 건전성·리스크관리, 이사회 절차 등 내부 견제장치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금융지주와 은행이 자본비율 산출 과정에서 위험 요소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고 이를 인식·측정·관리하는 업무에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다수 금융지주에서 책임준공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신탁 관련 위험가중자산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제대로 반영하면 우리금융과 KB금융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0~20bp(1bp= 0.01%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금감원은 추정했다.

이 밖에 특수목적회사(SPC)를 이용해 규제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계열사에 수천억원의 대출을 해주거나 지급보증을 선 사례도 적발됐으며 브릿지론을 부동산담보대출로 편법 취급하거나 부실화된 해외 상업용부동산 담보대출을 정상 신용등급으로 평가하는 등 고위험 자산을 통제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복현 원장은 “경영진이 단기 고수익·위험을 추구하도록 유인구조가 설계돼 건전성·리스크관리 장치가 작동되기 어려웠다”며 “이에 금융그룹의 위기대응능력이 과대평가되고 자회사가 금지된 브릿지론을 편법 취급하는 등의 부적절한 고위험 추구행태를 막지 못했다”고 직격했다.

이번에 처음 정기검사를 받은 토스뱅크의 경우 고객에게 거래정보 제공 사실을 통보하지 않는 등 금융실명법을 위반한 사례가 적발됐다. 전산 설계 오류로 신용평가점수 하위 10%의 취약소비자에게 대출성 상품 취급 1개월 전후로 예금상품을 판매한 사례도 발견됐다.

김은희·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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